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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022년 현대문학 신인상]아빠가 빠진 자리/유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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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98회 작성일 2025-02-13 23:19: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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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빠진 자리/유선혜

  흔들리는 이는 밤사이 빠졌고 아침이 되면 그 이를 뱉어냈다. 세 번 나는 이는 없다 사실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젖니를 모아두던 상자가 있었다. 밤마다 상자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새 이가 영원하라고 빌었다. 어린것들은 하얄수록 쉽게 변하는 법이다.

  이가 모두 자라자 더는 아빠와 함께 잘 수 없었다.

  사전에 의하면 충치는 일종의 전염병이다. 내 입으로 처음 세균을 옮긴 사람을 찾아낸 뒤, 온통 책임지라고 하고 싶었다.

  이를 닦으면 거품이 흘러나왔고 입을 헹구면 끝도 없이 구역질이 났다.

​  치과에 가는 날들이 늘었다. 아빠는 돈을 냈으며, 썩어버린 이를 고쳐주었고,
  나는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빠를
  상자 안의 젖니처럼

​  그렇게 두 번째 아빠가 생기고 세 번째 아빠가 생기고 네 번째 아빠 계속 계속 아빠가 늘어나고
  처음의 아빠는 다정하고 그다음 아빠는 엄격하고 그다음 다음 아빠는 유머러스하고
  아빠들은 묵묵히 나를 지켜보고
  나를 이룩해주고

​  아빠를 줄지어 늘어놓고 아빠의 개수를 세어보면서 어떤 아빠가 제일 하얀가 따져보며 괜한 투정도 부려볼 때, 상자 속에 아빠가 가득 차 아빠가 넘쳐서 더 이상 상자의 뚜껑을 닫을 수 없을 때,
  그러면 내 키도 영영 멈춰버릴 것 같았다.

​  아빠를 수집하고 싶었다.
  아빠를 모으면
  그러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월간 『현대문학』  (20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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