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일을 교정하다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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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일을 교정하다
정미경
기억이 책이라면
할머니 구술방식이다
팔순의 엄마와 마루에 앉아
개울의 징검돌을 띄엄띄엄 건너는 봄날
취합된 낱말들이 입속에 모이고
기억은 더듬더듬 난독을 읊조린다
비는 종일 내려 강둑을 넘겼던 진술들을 묵직하게 적시고 갈피를
빠져나온 표정이 낮게 떠다니다 마당가 동백꽃 속으로 숨는다
겨울과 봄 서로 다른 절기 앞에서 수백 송이 꽃이 지고 꽃이 피며 옛일을 교정한다
옛일은 지워진 받침이며 띄어쓰기며 누렇게 접힌 귀퉁이다
할머니 억양으로 엄마가 훌쩍이고 오래전 날짜 속으로 할머니는 숨고
자꾸 읽다 보면 기억이 되는, 나중에는 책이 없어도
문자가 아니 어도 깜박깜박 구술로 남을 일들
비를 안고 웅크린 동백꽃 꺾어들고 와
스웨터 벗어 다독거리는 엄마의 손목을 끌어안고
똑똑손톱을 자른다
-이 손톱처럼 엄마도 다시 자랐으면 좋겠어
뚝뚝 눈물을 자른다
- 2023 문학의 오늘
정미경
기억이 책이라면
할머니 구술방식이다
팔순의 엄마와 마루에 앉아
개울의 징검돌을 띄엄띄엄 건너는 봄날
취합된 낱말들이 입속에 모이고
기억은 더듬더듬 난독을 읊조린다
비는 종일 내려 강둑을 넘겼던 진술들을 묵직하게 적시고 갈피를
빠져나온 표정이 낮게 떠다니다 마당가 동백꽃 속으로 숨는다
겨울과 봄 서로 다른 절기 앞에서 수백 송이 꽃이 지고 꽃이 피며 옛일을 교정한다
옛일은 지워진 받침이며 띄어쓰기며 누렇게 접힌 귀퉁이다
할머니 억양으로 엄마가 훌쩍이고 오래전 날짜 속으로 할머니는 숨고
자꾸 읽다 보면 기억이 되는, 나중에는 책이 없어도
문자가 아니 어도 깜박깜박 구술로 남을 일들
비를 안고 웅크린 동백꽃 꺾어들고 와
스웨터 벗어 다독거리는 엄마의 손목을 끌어안고
똑똑손톱을 자른다
-이 손톱처럼 엄마도 다시 자랐으면 좋겠어
뚝뚝 눈물을 자른다
- 2023 문학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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