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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세한도/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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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회 작성일 2025-06-17 21:33: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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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곽재구

조합신문에 내 시가 실린 날
작업반 친구들과 소주를 마셨다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친구들은
매듭 굵은 손으로 석쇠 위의
고깃점들을 그슬려주었지만
수돗물도 숨차 못 오르는 고지대의 전세방을
칠년씩이나 명아주풀 몇 포기와 함께 흔들려온
풀내 나는 아내의 이야기를 나는 또 쓰고 싶다.

방안까지 고드름이 쩌렁대는 경신년 혹한
가게의 덧문에도 북풍에도 송이눈이 쌓이는데
고향에서 부쳐온 칡뿌리를 옹기다로에 끓이며
아내는 또 이 겨울의 남은 슬픔을
뜨개질하고 있을 것이다.
은색으로 죽어 있는 서울의 모든 슬픔들을 위하여
예식조차 못 올린 반도의 많은 그리움을 위하여
밤늦게 등을 켜고
한 마리의 들사슴이나
고사리의 새순이라도 새길 것이다.

- 곽재구,​『沙評驛에서』(창작과비평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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