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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살인은 연애처럼 연애는 살인처럼/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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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86회 작성일 2025-02-21 09:47: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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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연애처럼 연애는 살인처럼*/강성은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야 누군가 길에 내놓은 의자는 목
이 긴 여자처럼 혼자 서 있다 골목을 돌면 또다른 골목이
나타나고 나는 내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상점의 유리를 쳐
다본다 투명하고 희마하게 우리는 닮아 있어 너는 잠든 내
얼굴을 쳐다보기도 하는 것일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야
창백한 인형들이 줄지어 약국으로 들어간다 검은 새들이
유리문을 쪼아댄다 어둠이 이 거리를 우주 저 먼 시간으로
옮겨놓을 때까지
 
  너를 읽다가 너를 베고 누웠다 눈을 뜨고 감는 사이 어
쩌면 이것은 우아한 카니발리즘의 세계 내가 너를 씹어먹
고 네가 나를 흡수하고 서서히 가늘고 희미해져가고 말라
가고 뼈만 남는다 우리는 가장 가벼운 책이 되고 싶었지
바람이 불면 한 장씩 날아가 침묵에 이르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낮잠에서 문득 깨어나 팔을 깨물어본다 좀비
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꿈의 어떤 장면에서는 비가 내리고 나는 우산도 없이 달
린다 어떤 사람에게 나는 죽을 때까지 한 가지의 인상으로
존재할 것이다 나는 달린다 뼈들이 부딪혀 경쾌한 소리를
낸다 한밤중에 내리는 빗소리처럼
 
* 트뤼포가 히치콕의 영화에 대해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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