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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 빈 항아리 / 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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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44회 작성일 2024-10-06 16:36: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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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항아리 / 김해자

  수없이 말하고도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날
  나는 빈 항아리 하나 품고 싶네

  텅 빈 독에 얼굴 들이밀고 소리치면
  저 땅속 끝까지 날아가 아아아,
  소리 한 마디 버리지 않고 모두 담아
  나를 채우던 어릴 적 그 항아리를, 텅 비어
  둥글둥글한 항아리 같은 친구와 밤새도록 걸으며
  영원히 오지 않을 듯 싶은, 짝사랑 같은 우리
  먼 혁명과 사랑의 밤길 노래하며 미쳐 싸돌아다니고 싶네

  간장을 담으면 간장독이 되고
  된장을 담으면 된장독이 되고
  너와 나 그렇게 텅비어
  세상 그득 채울 수 있다면,
  꿈꾸듯 살다 깨지고 싶네
  비명도 변명도 없이

  수없이 나누고도 아무것도 나누지 못한 세월
  친구여, 나는 너의 빈 항아리가 되고 싶네

  - 김해자,『무화과는 없다』(실천문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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