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피운 꽃/길상호 > ㄱ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806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8,553
  • H
  • HOME

 

[길상호] 늦게 피운 꽃/길상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423회 작성일 2025-03-09 13:00:59 댓글 0

본문

늦게 피운 꽃/길상호

동백 화분을 하나 들여놓고서 봄이 다 가도록 앓았습니
다 내 속에 황사 바람 불어 아득해질 때마다 먼지처럼 가벼
운 기침을 해대면서 나무 곁을 서성이곤 하였습니다 빗방
울은 봄을 불러다 마음속에 아지랑이를 피워 놓고서 어디
머나먼 곳으로 달아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철 푸르렀을 잎 수북이 떨구어 내던 그 나무도 물 뿌린들
식지 않는 사막을 불러 제 속을 태우고 있던 것이지요 오래
맺혀 있던 꽃망울까지 하나 둘 투둑, 놓아 버리는 가지 끝
손들, 희망보다 절망이 절실한 때가 있음을 그 나무는 깨닫
고 있었나 봅니다 나는 마른 가지를 꺾으며 그 속에 물든 그
늘까지 솎아 내고 싶었지만 그늘은 나무를 지탱하는 유일한
힘인 듯 보였습니다 나무는 그늘에 기대어 마지막 생을
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봄이 다 지날 즈음에서야 빗방울
은 하나씩 다시 떨어져 불덩이처럼 뜨거운 동백의 이마를
짚어 주더군요 그늘이 품고 있던 봉우리 하나 그때 꽃으로
하나 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동백나무는 이제 되었다
고 정말 되었다고 속삭이면서 꽃잎을 통째로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