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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언니네 이발소/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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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91회 작성일 2025-02-05 21:58:4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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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소/김이듬

 내리막길에서 급정거를 한 건 순전히 한 사내 때문이었죠 흙먼지 뒤집어쓴 머리를 쑥 내밀며 막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죽순 같았어요 나는 도로 묻히려는 그 사내를 다독거려 백일홍 가지에 약속을 걸어두고 맞은편 이발소로 데려 갔어요 육계 머리칼을 뜯어 비눗물에 담그고 문질렀지요 빳빳하던 머리칼이 파래처럼 부드러워졌어요 의자에 누워 있던 사내의 튀어나온 눈이 따가울까봐 나는 출렁이는 젖가슴으로 닦아냈지요 매일 머리를 감겨 달래면 어쩌나 화를 내면 어쩌나 내가 도로 사내의 팔을 부축해서 밖으로 나왔을 땐 어느새 노을 지고 백일홍 꿈결같이 졌네요

어디쯤이었을까

나는 사내를 끌어올린 구덩이를 찾지 못하고 두꺼운 이불을 걷어내듯 도로를 헤집는데 사내는 일을 마친 성기처럼 안으로 쑤욱 들어가 얼굴만 석인상이 되었네요

나의 기억에 반쯤 묻힌 당신을 꺼내

하루에 몇 번씩 닦어드려요

어디쯤에서 잘못 되었나 고민하다가

광한루 지나

만복사지 옆 비탈길에서

비뚤하게 다시 만나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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