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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고속도로/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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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03회 작성일 2025-02-07 10:43:3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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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김기택

거무스름한 길이 뽑혀져 나온다.
지름이 십 미터도 넘을 것 같은 굵은 밧줄이 뽑혀져 나온다.
지평선에서 산허리에서 숲에서 쉴새없이 뽑혀져 나온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지치지 않고 뽑혀져 나온다.
박찬호의 직구 같은 속도로 뽑혀져 나온다.
거칠 것 없이 뽑혀져 나오는 속도에 다치지 않으려고
논과 밭, 나무들과 건물들이 좌우로 재빠르게 비켜선다.
산과 부딪치면 산이 단숨에 두 쪽으로 갈라지고
절벽이 가로막으면 밑으로 가차없이 기다란 구멍이 뚫린다.
뽑혀져 나온 길이 가만히 서 있는 자동차 바퀴를 맹렬하게 굴린다.
자동차는 가만히 있는데 바퀴는 맹렬하게 굴러서
바람이 전기톱으로 베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삼겹살처럼 얇고 넓적하게 잘린 바람이 창 틈으로 들어와
눈을 후벼파고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긴다.
올챙이 다리 달리듯 가로수와 전봇대와 건물에 시간이 돋아난다.
풍경은 속도와 반죽되어 윤곽이 지워지며 흐려지고
시간은 엿처럼 찍찍 늘어지며 창 밖으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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