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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박득세/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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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3회 작성일 2025-04-12 10:44:0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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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득세/곽재구
- 동명동 청소부

쓰레기 덮인 세상
지우며 사는 일은 얼마나 다사로운지
오늘도 새끼로 감발 치고 눈 내린 새벽길 걷는다
청국장밥 한술에 만 신새벽보다
마음 밖이 더 추운 세상인데
오늘은 영하 칠도 그것이 무슨 추위냐며
김이 나는 쓰레기더미에 삽을 꽂는다
생각하면 한세상 버리기 쉬운 쓰레기와 같은 것을
일찍 깬 뽕뽕다리 건너 전파상에서는
흘러간 시절의 뽕짝 몇 구절도 쓰레기통에 담아오고
눈 쌓인 털모자 다시 털어 써도 눈사람 된다
에헤라 노래나 부르랴 지나간 시절 가슴 저려오는데
에헤라 손장단 맞추랴 떠나온 고향 돌아갈 수 없는데
고개 들면 들기러기 조각달 물고 가는 여기는 탸향
남녘이라 인심 좋은 광주에서도 삼수갑산
내 고향 그리운 마음 삼십년이 하루 같네
서러웁지나 않을까 상것도 저 죽으면 향천에 발뻗는데
흰 눈은 상기 펑펑 쏟아지고
돌아갈 수 있는 마음조차 얼어붙어
어머니의 무덤 곁에 저무는 고향 강을 지켜보지 못한다면
쓰레기를 버리는 아낙들도 오늘은 고요하여 말수가 적고
불켜진 낮은 창마다 잊혀진 옛얘기들이 새어나온다
어서 가자 담배 한 모금도
뜻 깊게 빨아야 할 세상이 온다면
이 새벽 오랜 타관길 외롭지 않으리
덜컹대는 쓰레기차 타버린 연탄재와 나란히 앉아서
떨어진 한세상 붙여주며 눈 맞는 일
지금은 고요하여 언 가슴에 노래나 지피리.

- 『沙評驛에서』(창작과비평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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