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붉은 시전지/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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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전지/곽재구
부용리 마을회관
시멘트 벤치 앞에 차 세우고
가스불 피워 라면을 끓입니다
이따금 방목하는 염소도 지나가고
동천다려 민박집 진돗개 봉순이도 지나가고
멀구슬나무 열매 쪼던 콩새들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고
부산이나 광주 번호판 단 승용차들 때 없이 지나가는
길가에 쭈그려앉아 라면 가닥 익기를 멀거니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마을회관 앞 늙은 동백나무 한그루가
툭 꽃망울 하나를 길 위에 떨굽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용리 동백나무 숲길에는
떨어진 동백꽃들 지천이어서
떨어진 동백꽃 하나 보고
라면 한 가닥 입에 넣고
동백꽃 하나 눈 맞추는 동안
청별항 뱃고동 소리 길게 들어오고
여기저기 떨어진 동백꽃
세월은 절로 가고
떨어진 동백꽃 눈 맞추는 동안
나 역시 저 늙은 동백나무처럼
붉디붉은 사랑의 시 한편
이 지상에 툭 떨굴 날 부끄러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 『와온 바다』(창비, 2012)
부용리 마을회관
시멘트 벤치 앞에 차 세우고
가스불 피워 라면을 끓입니다
이따금 방목하는 염소도 지나가고
동천다려 민박집 진돗개 봉순이도 지나가고
멀구슬나무 열매 쪼던 콩새들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고
부산이나 광주 번호판 단 승용차들 때 없이 지나가는
길가에 쭈그려앉아 라면 가닥 익기를 멀거니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마을회관 앞 늙은 동백나무 한그루가
툭 꽃망울 하나를 길 위에 떨굽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용리 동백나무 숲길에는
떨어진 동백꽃들 지천이어서
떨어진 동백꽃 하나 보고
라면 한 가닥 입에 넣고
동백꽃 하나 눈 맞추는 동안
청별항 뱃고동 소리 길게 들어오고
여기저기 떨어진 동백꽃
세월은 절로 가고
떨어진 동백꽃 눈 맞추는 동안
나 역시 저 늙은 동백나무처럼
붉디붉은 사랑의 시 한편
이 지상에 툭 떨굴 날 부끄러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 『와온 바다』(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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