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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은행잎 지는 날/길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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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9회 작성일 2025-04-12 19:17: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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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 지는 날/길상호

은행나무 밑에서 더 이상 나는
세월에 대하여 할 말이 없네
제 속에 묻은 시간 먼저 화석이 되도록
가지 끝 수천 개 부채로 바람을 불러
활활 생의 불꽃 이어온 나무,
언젠가 그대 곁에 갈 수 있다고
지리한 장대비가 지나던 여름
그 불꽃 꺼질까, 꺼질까 마음 졸이며
안간힘으로 빗물 막아내던 나무,
그래 한 장 잎도 접지 못하고
뻐근하게 굳어 버린 그 나무 생각을 하면
그리움으로 혼자 만든 열매들
투둑, 투둑 내 가슴에 떨어지네
눈물로 피식, 쉽게 깨뜨리고 마는
나의 기다림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오늘처럼 우수수 부채 떨어뜨리며
은행나무 겨울의 불씨 가슴에 담는 날
나는 가슴 한 구석이 싸늘해지네
낡은 부채만 몇 잎 주워 들고서
식은 불씨만 자꾸 휘젓고 있네

-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문학세계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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