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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 해남시외버스터미널/김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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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1회 작성일 2025-04-16 11:15:3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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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시외버스터미널/김태정

이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난 일은 지나간 일이 되어버려
마음은 어느덧 어란의 갯벌을 닮아가는구나

꽃 피는 계절에도 마음은 시려
그리움도 그만큼서 언 뺨을 후려치던 봄날과
동백숲에서 마주치던
상처 입은 도마뱀의 눈빛과
미칠 것 같던, 산이면의 시뻘건 황토구릉과
폐허된 사랑과 그리고 또 무엇……

유배지에 걸린 풍경 몇점을
갈피갈피 싸매고 여며
이젠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난날은 온전히
사구포 앞바다의 눈썹달과
파도소리를 베고 누워
별들의 거리를 가늠하던 자갈밭과
느릿느릿 나직나직
저녁밥상을 차려주시던
할머니의 손끝으로 회향하는구나

갈두 어란 땅끝 완도……
그 소금기 쓰린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보며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는 해남시외버스터미널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등 기댈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지금 서울로 간다

별빛 아래 누워
파도 소릴 듣던 그 자갈밭이
정도리 바닷가였다는 것도
짐을 꾸린 뒤에야 알았으니
뒤늦게 욱신욱신 쑤셔오는 추억과 함께
잘 있거라 유배지여
잘 가라 시절들이여

지난날은 온전히 지나간 날이 되어
다도해 눈부신 포말로 돌아가는구나

-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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