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이씨의 눈/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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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李)씨의 눈/김명인
도선사나 되어야겠다며 李씨,
파도 차가운 물에 녹슬어 취한 얼굴을 씻고
이곳 떠나 배운 짓 달리 없으니
통일 되면 남 먼저 고향에 가서
돌아오는 배들이나 제 손으로 끌어 보겠다더니
李씨, 오십 줄에 벌써 눈 흐려지니 틀렸다고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도
별수 없이 옛집 어귀에 술장사나 차릴 도리라고
요즈음엔 부쩍 수척해져서
꿈에 낯익은 모습을 보게 되니 웬일이냐고 묻던
며칠째 李씨, 이곳에서 볼 수가 없고
구석진 선술집 허름한 좌판 위에도
오늘은 철늦은 눈이 날린다 내리면서 눈은
부두의 경계 이쪽 저쪽으로 갈라져 쌓이며 스러지는데
어느 진창길에 곤두박혀 그의 평생도
더러 쌓이고 소리 없이 스러졌는가?
잠시 머물 눈도 어깨에 지니 사는 것 저려 오고
날리는 것들만 아득해서 천지
가려 놓으니
그 너머 어디쯤에 고향은 활짝 개어 있을는지
李씨여, 내리는 동안 서로 얼굴 비벼대도 떨어져선
파도에 묻혀 흔적 없는 우리도 눈이겠거니
땅에 쌓이는 것도 곧 녹아 저렇게 눈물이 되는구나
- 『東豆川』(문학과지성사, 1979)
도선사나 되어야겠다며 李씨,
파도 차가운 물에 녹슬어 취한 얼굴을 씻고
이곳 떠나 배운 짓 달리 없으니
통일 되면 남 먼저 고향에 가서
돌아오는 배들이나 제 손으로 끌어 보겠다더니
李씨, 오십 줄에 벌써 눈 흐려지니 틀렸다고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도
별수 없이 옛집 어귀에 술장사나 차릴 도리라고
요즈음엔 부쩍 수척해져서
꿈에 낯익은 모습을 보게 되니 웬일이냐고 묻던
며칠째 李씨, 이곳에서 볼 수가 없고
구석진 선술집 허름한 좌판 위에도
오늘은 철늦은 눈이 날린다 내리면서 눈은
부두의 경계 이쪽 저쪽으로 갈라져 쌓이며 스러지는데
어느 진창길에 곤두박혀 그의 평생도
더러 쌓이고 소리 없이 스러졌는가?
잠시 머물 눈도 어깨에 지니 사는 것 저려 오고
날리는 것들만 아득해서 천지
가려 놓으니
그 너머 어디쯤에 고향은 활짝 개어 있을는지
李씨여, 내리는 동안 서로 얼굴 비벼대도 떨어져선
파도에 묻혀 흔적 없는 우리도 눈이겠거니
땅에 쌓이는 것도 곧 녹아 저렇게 눈물이 되는구나
- 『東豆川』(문학과지성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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