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김명인 > ㄱ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194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8,941
  • H
  • HOME

 

[김명인] 의자/김명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19회 작성일 2025-04-16 13:06:29 댓글 0

본문

의자/김명인

창고에서 의자를 꺼내
처마 밑 계단에 얹어놓고 진종일
서성거려온 내 몸에게도 앉기를 권했다
와서 앉으렴,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때로는 창고 구석에 처박혀
어둠을 주인으로 섬기기도 했다
마른장마에 잔 비 뿌리다 마는 오늘
어느새 다 자란 저 벼들을 보면
들판의 주인의 바람인가
온 다리가 휘청이면서도 바람에게
의자를 내주는 것은
그 무게로 벼를 익히는 것이라 깨닫는다
흔들리는 생각이 저절로 무거워져
의자를 이마 높이로 받들고 싶어질 때
저쪽 구산 자락은 훨씬 이전부터 정지의 자세로
지그시 뒷발을 내리고 파도를 등에 업는 것을 본다
우리에게 어떤 안식이 있느냐고 네가
네 번째 나에게 묻는다
모든 것을 부인한 한낮인데 부지런한
낮닭이 어디선가 길게 또 운다
아무도 없는데 무엇인가 내 어깨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힘겹게 흔들린다

- 『길의 침묵』(문학과지성사, 199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