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깨진 항아리 / 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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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항아리 / 최영철
밑동 깨진 항아리에 옮겨 심은
노루귀 솜다리 흰씀바귀 피고
봄이 왔다
좁은 주둥이 위 키 자랑하며 핀 꽃들
밑동 깨지지 않았으면
그 안에서 썩고 말았을,
주둥이 넓었으면 뚫고 나오려고
저렇게 힘쓰지도 않았을 몸들이
촘촘히 뿌리내리고 있다
산책로 넓히려고 마구 파헤치던
흙더미 사이 용케 건져낸 어린 싹
뽑힌 채 나뒹군 기억들 힘이 되었을까
어서 가자, 서로 발돋움하며
하늘 향해 뻗은 줄기
물 뿌려주어도 그 물 다 품지 않는다
자꾸만 달려드는 물기둥
더이상 받지 않고 뿌리치며 흘려보내며
바싹 마른 목 위로 치켜세운다.
갸날픈 다리 아래로 아래로 내려꽂는다
- 최영철,『그림자 호수』(창비, 2003)
밑동 깨진 항아리에 옮겨 심은
노루귀 솜다리 흰씀바귀 피고
봄이 왔다
좁은 주둥이 위 키 자랑하며 핀 꽃들
밑동 깨지지 않았으면
그 안에서 썩고 말았을,
주둥이 넓었으면 뚫고 나오려고
저렇게 힘쓰지도 않았을 몸들이
촘촘히 뿌리내리고 있다
산책로 넓히려고 마구 파헤치던
흙더미 사이 용케 건져낸 어린 싹
뽑힌 채 나뒹군 기억들 힘이 되었을까
어서 가자, 서로 발돋움하며
하늘 향해 뻗은 줄기
물 뿌려주어도 그 물 다 품지 않는다
자꾸만 달려드는 물기둥
더이상 받지 않고 뿌리치며 흘려보내며
바싹 마른 목 위로 치켜세운다.
갸날픈 다리 아래로 아래로 내려꽂는다
- 최영철,『그림자 호수』(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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