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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 탑/문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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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7회 작성일 2025-04-14 15:41: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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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문성해

한 생애가 또 한 생애를 이고 천 년을 버티는 거라
천 년을 눌려 있어도 욕창 하나 없이 저리 명징하다니
허공은 가히 허공인 거라
바람도 저이에게 한 번 부딪치면
절집에선 조곤조곤 불다 가는 거라

이끼 낀 발치 아래
개망초 개비름풀이 질금질금 피다 가는 것을 보니
저 이가 천하가인은 아니고
작은 갓을 비뚜름히 쓴 서리 출신은 더더욱 아니고
휘늘어진 등줄기가
나룻목에서 남정네를 기다리는 아낙의 그것인 거라

누군가 햇볕 따스한 귓등 위에 어린 돌들 얹어주고 가며
저 이에게는 아직 희구하는 바가 많아서 그렇다고 하고
열망이 너무 커서 무너질 수 없다고도 하고
옆도 뒤고 보지 않고 모은 손처럼 간절히 살아온 저 이가
볕 좋은 오늘은
제 이름 버리고 국화과 정도의 이름으로 흔들리고 있는 거라
볕과 비바람에 푸석해진 이마 밑에
명주잠자리 한 쌍 살포곤 앉아서 졸고 있는 거라

 -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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