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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백 년 항아리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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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30회 작성일 2024-10-06 16:39:3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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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항아리 / 박형준

  백 년 항아리 속에 들어가보네
  할머니로부터 어머니에게로 내려온
  속이 깊고 넓은 항아리 하나
  외양간에서 목욕을 하며
  우둘투둘한 어머니의 허리 같은
  몸속에 들어가보네
  알몸으로 아버지처럼 들어가보네
  외양간 틈 사이로 비치는
  장독대 저쪽 맨드라미 두어 송이
  항아리는 우세스러워 내 알몸을 뱉어내네
  아침 들판을 향해
  벼를 스치듯 걷는 걸음걸이,
  길과 골목을 옆구리에 붙이고
  제 구멍을 찾아가는 왕쥐처럼
  저녁에 자기 키보다 높게 짚단을 지고
  지평선에 지게를 부리던 아버지
  소 외양간 너머로 노을이 타네
  지평선에 땔감으로 불을 지르며
  자식의 목욕물을 데우네
  호박 넝쿨이 새파랗게 외양간을 타 오르는
  아버지의 기일,
  들에서 돌아와 몸을 씻던
  내력의 어둠과 목욕을 하네

  - 박형준,『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문학과지성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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