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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환] 항아리 / 조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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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37회 작성일 2024-10-06 16:22: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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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 조창환

  오랫동안 나는 항아리에 담긴 것이 어둠인 줄로 알았다
  항아리에 귀대고 들으면
  우웅우웅 울리는 것이
  어둠이 내는 소리인 것으로 생각했다
  어둠은 깊고 따듯하고
  부드러운 줄로 알았다
  가슴 속에 항아리 하나 품고
  평생을 어루만지며 사는 사람이 되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일찍 포기했던가
  깊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어둠을 껴안기 위해
  나는 번쩍이는 도끼를 버렸다

  그런데, 이제,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니
  거기 담긴 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부서진 꽃, 흩어진 뼈, 몇 억 몇 천만 년의
  고독과 침묵
  그런 것들이 그르렁거리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항아리를 차라리
  가슴 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오늘부터
  내가 항아리가 되었다
  항아리가 된 나를
  어둠의 깊이와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사랑하는 누가 와서
  쓰다듬어 다오
  내가 눈물로 그르렁거릴 때
  그대는 우웅우웅 운다고 말하며
  부드럽게 어루만져 다오

  - 조창환,『수도원 가는 길』(문학과지성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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