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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두부 이야기/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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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83회 작성일 2025-03-07 11:47: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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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이야기/정끝별

출생의 비밀처럼 자루 속 누런 콩들이 쏟아진다
이야기는 그렇게 실수처럼 시작된다

비긋는 늦여름 저녁 식탁에 놓일 숟가락 개수를 결정해야 해,
그게 라스트신이거든

물먹다 나왔는데 또 물먹으며 으깨진다
시간의 맷돌은 돌아가고 똑딱똑딱 떨어져 고인
너의 나날은 푹푹 삶아져야 고소해지고
거품을 잘 거둬낼수록 순해진다
매 순간의 물과 불 앞에선 묵묵한 캐릭터가 필요해

오랜 짠물은 너의 단맛을 끌어올려준다
몽글한 웅얼거림과 뜨거운 울먹임이 뒤섞여 엉겼다가
무명 보자기에 걸러지면서 단단해지는 이 플롯을
구원이라 할까 벌 아니면 꿈이라 할까

담담한 눈빛과 덤덤한 낯빛으로 맞이하는 밥상에서
만만찮은 희망으로 만만한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콩밭 매는 마음과 콩밭에 간 마음을 쓸어 담아
써 내려가야 갈 너의 한밤이 희고 깊다

밤새 이야기는 그렇게 쏟아지고 불려져
아침의 너는 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출처 : 시집 《모래는 뭐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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