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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는 물건이었을꼬 - 권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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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47회 작성일 2021-10-29 11:43: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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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는 물건이었을꼬 
      권명희

​ "이거 왜 안 돼?"

 모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TV 리모컨부터 찾아 든 남편은 이리저리 눌러 봐도 켜지지 않자 나를 보며, 애타는 눈빛을 보냈다.

 큰아들 첫 면회 갔던 날, 외출 허락을 받아 영천 시내로 나왔다. 이른 점심을 먹기고 나니 딱히 갈 데도 없고 아이도 어디 가서 쉬었으면 하기에 생각 끝에 모텔을 택했다. 내 관심은 온통 큰아들에게 쏠려있는데 그거 하나 못 켜고 참 성가시게도 굴었다. 남편이 상당한 기계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리모컨을 기계라 하기는 미망하지 않은가. 눈을 흘기며 리모컨을 받아 들었다. 집에 있는 것보다 복잡하긴 했다. TV 전원 버튼을 누르면 켜질 거 같은 생각에 막 누르려다 문득 내가 이걸 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생겼다. 남편이 못한 모텔 방 리모컨 작동을 단박에 해 낸다면 내가 좀 수상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작은아들이 리모컨을 가져가 잠시 들여다보더니 한방에 TV를 켜 주었다. 오, 역시? 엄마의 칭찬에 으쓱 어깨가 올라간 녀석이 침대로 가더니 뭘 하나 주워들었다.

 "어? 엄마 여기도 리모컨 있는데."

 녀석이 그새 뭘 눌렀는지 갑자기 침대 머리가 벌떡 일어났다. 

 "뭐야? 무슨 병원 환자 침대도 아니고 이게 왜 일어나는 거야? 내려, 내려!"

 내 반응에 놀란 녀석이 이것저것 눌러댔다. 내려가라는 침대 머리는 안 내려가고 이번엔 느닷없이 침대가 덜덜덜 떨다가 쿨럭쿨럭, 벌떡벌떡하며 난리를 피웠다.

 "잉? 어머, 어머, 이늠 시키, 니 그거 가만 안 둬? 빨리 꺼!"

 모르긴 몰라도 뭔가 야릇한 용도로 쓰일 거라는 걸 모두 눈치를 챈 듯했다. 남편은 TV를 보는 척 큭큭 웃었고, 큰 녀석은 부리나케 컴퓨터로 시선을 옮겼다. 일을 저지른 작은 녀석은 허둥지둥 침대의 요동을 잠재우려 했고 나는 남편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 어색한 상황을 농담이든 뭐든 수습하라는 신호였지만 남편은 못 본 척 TV 채널만 열심히 돌려댔다.



 '이 땅의 여자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아들 가진 엄마들이 잘 해야 해. 아들 교육을 잘 해야 한다고.' 아이들 어릴 적 동네 엄마들과 육아 얘기 중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자주 했던 말이다. 무슨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거창한 뜻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남자 형제 많은 집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들었던 생각이다. 어쩌다 아들놈만 둘을 낳아 실천할 처지가 되니 어쩌면 내게 하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성교육은 건전한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잘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큰 형아 되면 고추에 털이 날 거야. 그러면 엄마한테 꼭 말해야 해. 엄마랑 아빠가 해 줄 얘기가 있거든."

 아이들 목욕을 시킬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왜? 왜 털 나? 나 털 나기 싫은데."

 잇몸까지 보이게 깔깔 웃던 녀석들은 어느 사이 아빠 손에 이끌려 동네 목욕탕에 다니게 되었다. 목욕 바통을 넘겨받은 남편은 주말마다 거르지 않고 아이들을 몰고 나갔다. 몇 해가 지나고 당연한 주말 일상이었던 일이 어느 때부터 미묘하게 틈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따라나서던 아이들이 서너 번 재촉해야 가더니 나중에는 목욕탕 데려가는 게 전쟁이 되었다. 안 가려는 아이들과 기어이 데려가려는 아빠 틈에서 주말 아침이 난장판이었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등 뒤에서 이상한 떨림을 감지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여느 때처럼 게임을 하던 큰 녀석을 밀어내고 잠깐 컴퓨터를 보느라 책상에 앉아 있을 때였다. 탁탁탁탁, 규칙적으로 감지되는 이상한 움직임에 신경이 등 뒤로 뻗어 나갔다. 뭐지? 등 뒤에는 엄마가 빨리 컴퓨터에서 비켜 주기만을 기다리는 큰 녀석이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이 움직임의 실체가 뭔가 불안했다.

 그때 탁 떠오르는 생각 하나. 아! 이 녀석 고추에 털 났구나. 그렇다면, 그렇다면! 아무리 이제 막 질풍노도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엄마가 뻔히 앞에 앉아 있는데(물론 뒤 돌아 있지만)설마 그럴 리가! 내 머릿속에 있는 그 그림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움직임의 짜임새가 눈에 보이듯 선명했다. 컴퓨터를 뺏기고 심심해진 손이 처음에는 고추를 만지작거리다가 점점 가속이 붙었을까. 이제 막 고추 만지는 쾌감을 알게 돼서 제어가 안 되는 것일까.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가 되어갔다. 차마 뒤돌아볼 수는 없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게임이라도 해야 고추에서 손을 뗄 것이기에 컴퓨터 일 다 본 거처럼 방을 나섰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잘해보리라 다짐했던 성교육인데 도무지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에게 떠넘겨 보기로 했다. 남자들 일이니까 아무래도 아빠가 엄마보다는 낫겠지 생각했다.

 "그걸 뭘 말을 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게 돼. 저절로."

 아, 아들이 아니라 남편을 먼저 교육했어야 했다. 별 소득 없는 남편 말에 영양가 없는 말로 답했다.

 "애들이 무슨 초코파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게?"

 궁리 끝에 언젠가 들었던 성교육전문가 구성애 씨의 강의를 떠올려 아들방에 비싼 크리넥스를 사다 놓고 우물우물 물색없이 말했다.

 "화장지 이거 쓰고... 그리고 이제 팬티 더 자주 갈아입어. 또...어...그 뭐냐 고추 아무 때나 자주 만지지 말고...아, 아니 오줌 눌 때...말이야. 손 깨끗이 씻어... 손 더러우니까! 알았지?"

 게임을 하느라 정신 팔린 녀석이 대답했던가, 안 했던가.

 고민은 계속되었다. 그 크리넥스는 때와 장소를 가려 써야 한다는 걸 가르쳐야 했다. 아, 부모에게도 누군가 교육을 해줬으면 좋겠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을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너도 그 나이가 처음이겠지만 나도 그 나이의 네가 처음이란 말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작은 녀석이 한쪽 다리를 달달달 떨고 있었다. 다리 떨면 복 달아난다고 하니 녀석은 운동 돼서 살 빠진다고 우겼다. 문득 그 움직임의 파장이 낯설지가 않았다. 아하! 눈앞에서 뾰로롱 하고 빛이 꽃처럼 퍼지는 것 같았다. 큰 녀석도 그럼 다리떨기를 한 거였구나!

 알고 보니 두 녀석은 그 무렵 다리 떠는 버릇이 생겼던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 다리 떨기가 유행처럼 퍼져 큰 녀석이 먼저 배워 왔다고 한다. 형이 하니 뭔가 멋져 보여 작은 녀석은 따라 떨었을 것이다. 움직임의 실체를 알고 나니 크리넥스 사용법을 일러주는 것이 조금 수월했다. 뭐든 떠는 것들은 가끔 내 심장을 이렇게 옴찔옴찔하게 만든다.



 겨우 잠잠해진 침대를 보고 민망한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한마디 했다.

 "도대체 이건 뭐에 쓰라고 요래 펄떡펄떡 거리다 후달달달 떨면서 훌 볶는 야? 요상하네, 참말로."

 작은아들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혹시...안마?"



-한국산문 2018년 2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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