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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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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778회 작성일 2022-03-23 13:23:3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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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

아내가 고향에 가 묻히던 날은 비가 내렸다
파헤쳐진 붉은 흙이 빗물에 흘러내리는 산비알
차일 속에서 아낙들은 국을 푸며 찔끔댔다
젊은 남편의 무능과 용렬을 탄식하면서.
그날도 비가 왔다 철없는 짓거리에
대들기도 부끄러워 스스로 자술서에 도장을 찍고
아무렇게나 유치장 마루에 널브러지던
도시의 소음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던 밤도.
비가 내렸다 그녀와 헤어지던 그 가을
무력한 내 손에 꽂히던 연민과 경멸의 눈빛
머리칼이 젖고 목덜미가 젖고 나뭇잎이 젖고
우리들 오랜 떨림과 기쁨이 젖고.
그가 죽던 날도 비가 내렸다 두려워서 너무
두려워서 잊어버리자고 그를 잊어버리자고
멀리 도망가 숨어서 울던 날
그의 말을 잊어버리자며 얼굴을 잊어버리자며.
 
그날도 비가 오리라 내가 세상을 뜨는 날
벗어놓고 갈 헌 옷과 신발을
허위와 나태의 누더기를
차고 모진 빗줄기로 매질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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