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 속을 -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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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속을
박노해
웅크려 헤쳐 나가며 작업시간에
가끔 이렇게 일 보러 나오면
참말 좋겠다고 웃음 나누며
우리는 동회로 들어선다
초라한 스물아홉 사내의
사진 껍질을 벗기며
가리봉동 공단에 묻힌 지가
어언 육 년, 세월은 밤낮으로 흘러
뜻도 없이 죽음처럼 노동 속에 흘러
한 번쯤은 똑같은 국민임을 확인하며
주민등록 경신을 한다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아
없어, 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없어, 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 버렸어
임석경찰은 화를 내도
긴 노동 속에
물 건너간 수출품 속에 묻혀
지문도, 청춘도,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나 봐
-박노해, 「지문을 부른다」, 부분.
박노해
웅크려 헤쳐 나가며 작업시간에
가끔 이렇게 일 보러 나오면
참말 좋겠다고 웃음 나누며
우리는 동회로 들어선다
초라한 스물아홉 사내의
사진 껍질을 벗기며
가리봉동 공단에 묻힌 지가
어언 육 년, 세월은 밤낮으로 흘러
뜻도 없이 죽음처럼 노동 속에 흘러
한 번쯤은 똑같은 국민임을 확인하며
주민등록 경신을 한다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아
없어, 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없어, 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 버렸어
임석경찰은 화를 내도
긴 노동 속에
물 건너간 수출품 속에 묻혀
지문도, 청춘도,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나 봐
-박노해, 「지문을 부른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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