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양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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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양승수
만유인력
잘 여문 것 좇아 줄기와 가지 따라
억지로 삼키던 몇 모금의 물 따라
바쁘게 걸어온 길에서 폴짝 뛰어오른다
느껴지지 않던 중력이 어느 순간 무거워져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날아오르는 것이다
떨어질 때가 된 사과는 서서히 붉어지는 것이고
떨어지고 난 사과가 여전히 싱싱한 것은
사라지지 않은 관성, 따르다 남은 습관 탓이다
사과의 단맛은 그런 식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과를 가졌을까
하루에도 몇 개의 사과가 공중으로 날아오를까
저로부터 최대한 멀리 뻗어
그러나 고작 몇 발자국 사과를 배웅 나갔다가
휘어졌던 가지가 그 탄력으로
복원되는 궤적을 그리며 돌아온다
돌아오는 가지 하나 횡단보도를 건넌다
걸음 재촉하는 신호등
가던 길 멈추고 고개 돌려 옆을 보았다면
중력이 늘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거나
받아들이거나
도로에는 각자 서로 다른 중력으로 달려온 것들
잠시 멈추어 서 있다
그러나 멈추었다는 것을 아는 자동차는 없다
아무도 시동을 끄지 않는다
떨어진 낙과의 단맛 같은 엔진소리
정지선에 닿기 전 이 곳은 공중이다
바람이 지나온 커브길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뻗어나간 잎맥의 갈림길 따라
빨아들인 햇빛 같은 후회
꽃 피었다가 졌던 시간 흘러가지 않고 멈춰
오래 서성이던 발자국이었다가
흘러갈 곳 없는 소리들 엉켜있던 것이라 한들
사과를 두고 무슨 오해라 할까
양승수
뉴튼 사과와 이 시대 일상 적절한 시적 거리로 밀당
시는 언어예술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언어가 박제된 문장으로만 남아서는 시가 되지 않는다. 언어는 화자의, 그리고 시인의 목소리가 실린 '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말이 살아 독자를 향해 나아갈 수 있고, 독자의 시가 될 수 있다. 시는 언제나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이지만, 시인이 되고자 꿈꾼다는 것은 또 언제나 이 언어와 말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새 시인을 찾기 위해 1,000편이 넘는 응모작을 만났다. 코로나시대의 불안증이 시 쓰기에도 가위 누르기를 한 까닭일까, 전반적으로 활기차고 패기 넘친 작품보다는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또 상투적인 언어와 생경한 이미지의 나열로 인해 박제화 되어버렸거나, 최소한의 형상화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기억과 일상을 그대로 진술하고 있는 응모작도 적지 않았다. 이들을 일차 걸러낸 후 남은 작품들을 다시 꼼꼼히 읽었다.
심사자의 감식안을 시험한 응모작에는 오랜 숙련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는 작품도 있고, 새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읽어낸 작품도 있었다. 홍여니의 〈를리외르〉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책 제본 과정에 빗대어 쓴 작품이었다. 그 상상력이 흥미로웠지만 묘사와 진술을 중첩시킨 어법에서 몇 군데 억지스러운 이미지가 정서적 몰입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었다. 고경자의 〈끈의 방식〉은 직장인의 삶의 방식과 애환을 진솔하게 담아내면서 체험과 사유를 잘 조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마무리 부분에서 시적 긴장이 유지되지 못한 채 느슨하게 풀려버린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손에 남은 응모작은 최형만의 〈새들의 삽화〉와 양승수의 〈만유인력〉이었다. 두 작품 모두 당선작으로 삼아 무방할 시품을 갖추고 있었다. 〈새들의 삽화〉는 언어를 다루고 시상을 직조하는 능력이 대단히 숙련되고 단단하였다. 굳이 흠을 잡자면 그 단단함 때문에 오히려 신인으로서의 활달함이 덜 느껴졌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만유인력〉을 당선작으로 선하였다. 거기에는 인간 존재의 무게와 삶의 부피를 응축시키는 상상력의 힘이 있었다. 뉴튼의 '사과'와 이 시대의 '일상'이 적절한 시적 거리로 밀고 당기고 있었다. 특히 꽤나 긴 호흡으로 끌고 간 작품인데도 끝까지 시상에 흐트러짐이 없었다는 점이 앞으로의 시적 성취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였다. 당선인에게는 축하를 드리며, 아깝게 선택되지 못한 분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김동근(전남대 국문과 교수)
만유인력
잘 여문 것 좇아 줄기와 가지 따라
억지로 삼키던 몇 모금의 물 따라
바쁘게 걸어온 길에서 폴짝 뛰어오른다
느껴지지 않던 중력이 어느 순간 무거워져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날아오르는 것이다
떨어질 때가 된 사과는 서서히 붉어지는 것이고
떨어지고 난 사과가 여전히 싱싱한 것은
사라지지 않은 관성, 따르다 남은 습관 탓이다
사과의 단맛은 그런 식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과를 가졌을까
하루에도 몇 개의 사과가 공중으로 날아오를까
저로부터 최대한 멀리 뻗어
그러나 고작 몇 발자국 사과를 배웅 나갔다가
휘어졌던 가지가 그 탄력으로
복원되는 궤적을 그리며 돌아온다
돌아오는 가지 하나 횡단보도를 건넌다
걸음 재촉하는 신호등
가던 길 멈추고 고개 돌려 옆을 보았다면
중력이 늘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거나
받아들이거나
도로에는 각자 서로 다른 중력으로 달려온 것들
잠시 멈추어 서 있다
그러나 멈추었다는 것을 아는 자동차는 없다
아무도 시동을 끄지 않는다
떨어진 낙과의 단맛 같은 엔진소리
정지선에 닿기 전 이 곳은 공중이다
바람이 지나온 커브길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뻗어나간 잎맥의 갈림길 따라
빨아들인 햇빛 같은 후회
꽃 피었다가 졌던 시간 흘러가지 않고 멈춰
오래 서성이던 발자국이었다가
흘러갈 곳 없는 소리들 엉켜있던 것이라 한들
사과를 두고 무슨 오해라 할까
양승수
뉴튼 사과와 이 시대 일상 적절한 시적 거리로 밀당
시는 언어예술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언어가 박제된 문장으로만 남아서는 시가 되지 않는다. 언어는 화자의, 그리고 시인의 목소리가 실린 '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말이 살아 독자를 향해 나아갈 수 있고, 독자의 시가 될 수 있다. 시는 언제나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이지만, 시인이 되고자 꿈꾼다는 것은 또 언제나 이 언어와 말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새 시인을 찾기 위해 1,000편이 넘는 응모작을 만났다. 코로나시대의 불안증이 시 쓰기에도 가위 누르기를 한 까닭일까, 전반적으로 활기차고 패기 넘친 작품보다는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또 상투적인 언어와 생경한 이미지의 나열로 인해 박제화 되어버렸거나, 최소한의 형상화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기억과 일상을 그대로 진술하고 있는 응모작도 적지 않았다. 이들을 일차 걸러낸 후 남은 작품들을 다시 꼼꼼히 읽었다.
심사자의 감식안을 시험한 응모작에는 오랜 숙련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는 작품도 있고, 새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읽어낸 작품도 있었다. 홍여니의 〈를리외르〉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책 제본 과정에 빗대어 쓴 작품이었다. 그 상상력이 흥미로웠지만 묘사와 진술을 중첩시킨 어법에서 몇 군데 억지스러운 이미지가 정서적 몰입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었다. 고경자의 〈끈의 방식〉은 직장인의 삶의 방식과 애환을 진솔하게 담아내면서 체험과 사유를 잘 조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마무리 부분에서 시적 긴장이 유지되지 못한 채 느슨하게 풀려버린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손에 남은 응모작은 최형만의 〈새들의 삽화〉와 양승수의 〈만유인력〉이었다. 두 작품 모두 당선작으로 삼아 무방할 시품을 갖추고 있었다. 〈새들의 삽화〉는 언어를 다루고 시상을 직조하는 능력이 대단히 숙련되고 단단하였다. 굳이 흠을 잡자면 그 단단함 때문에 오히려 신인으로서의 활달함이 덜 느껴졌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만유인력〉을 당선작으로 선하였다. 거기에는 인간 존재의 무게와 삶의 부피를 응축시키는 상상력의 힘이 있었다. 뉴튼의 '사과'와 이 시대의 '일상'이 적절한 시적 거리로 밀고 당기고 있었다. 특히 꽤나 긴 호흡으로 끌고 간 작품인데도 끝까지 시상에 흐트러짐이 없었다는 점이 앞으로의 시적 성취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였다. 당선인에게는 축하를 드리며, 아깝게 선택되지 못한 분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김동근(전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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