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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노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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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406회 작성일 2023-01-03 17:24: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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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착


오전에 내린다는 비는
오후가 되어서야 쏟아졌다
아마도 우산들의 모의가 있었지 싶다

몇몇 우산의 후예는 지구 밖으로 날아갔다. 활짝 펴졌다. 그리고 다시 우기를 살피고 비의 입자를 감지했다. 가끔은 지구 밖에서도 비가 내린다고 빗소리 같은 잡음을 전송해 왔다

비는 늘 시시각각을 벗어난 적이 없다 어느 곳에서든 정시를 고집하지 않고 습도의 비율을 찾아다녔다.

연착이 없는 태양과 달,
단호한 날짜마다 태양과 달의 봉인 도장이 찍혀 있다

비가 내리는 동안 지상의 나무는 그늘을 따돌리고 잠깐 자란다. 타설된 오전에서 오후의 빗방울 화석이 발견되었지만 그건 인류의 역사를 밟고 지나간 거인의 발자국과 같은 과정일 것이다.

느닷없이 쏟아진 소나기는 저 아랫마을에 가서 깊어졌다

끊긴 오전에서 오후를 넘어온 시내버스 운전사는 연착을 설명하느라 바쁘고 왼손쯤에서 사라졌던 태양이 오른손에서 발견되었다.

이유 불문, 태어나는 일에는 연착이 없지만 태몽은 연착이 있다

약속은 대부분 내려야 할 곳을 놓친 사람의 입장이 아니다
중간에 교차로가 있고
속도의 결렬이 있고
아직 분실이
바닥에 닿지 못하는 이유다

 

 

 

 

 

모두와 기쁨 함께…"빗방울 같은 둥근 시인 되겠다"

모르는 번호의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그건 내가 몰랐던, 모르고 있는 곳의 소식이라고 알려주는 듯 했습니다. 몇 마디 말 끝에 우산이 확 펴졌습니다. 제법 무게가 나갔습니다. 순간, 방바닥과 발바닥의 사이가 한 뼘쯤 들떴고 12볼트의 바람이 불어와 나는 잠시 홀씨가 된것 같았습니다. 왼쪽 가슴 아래가 저렸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아무런 질문없이 대답만 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지구 근처에서 우주의 먼 과거를 쏘아보는 제임스웹 망원경의 눈동자처럼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는 과거를 쓰는 자세를 잃지 않겠습니다.
신앙과 시의 길을 가르쳐주신 마경덕 선생님 존경합니다. 이승하 교수님, 중앙대 잉걸문우님들 고맙고 감사합니다. 같이 공부한 롯데 평촌 문화센터 문우들과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믿어주는 가족이 있어 모든 것이 처음이며 결과입니다. 존재감만으로도 든든한 남편 지준각씨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내 생에 최고의 선물인 윤정이 영진이 가정 축복하고 준빈 준우야 사랑해!
아직 비를 만나지 못한 구름이거나 말 못하는 사람의 손짓에 불과한 저를 선해주신 광남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끝을 동그랗게 모아들이는 빗방울 같은 둥근 시인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노수옥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한국문인협회 회원 △중앙대 잉걸회 회원 △글향·안양여성문학회 회원 △18회 김포문학상 시부분 우수상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시부문 입상





사유의 발랄함·냉정한 시선…신인의 과감함 돋보여

십여 년 전부터 신인상에 응모하는 작품 속에서 응모자의 성별과 나이를 짐작하는 일이 무척 어려워졌다. 이번 심사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를 위해 인적 사항을 지우고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하는 방식의 영향이 크겠지만, 신선한 감각과 개성적 사유가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듯 투고된 작품들이 하나같이 세대의 구분을 지워놓고 있기 때문이다. 시로 다시 한번 청춘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고투도 빛나 보였다. 응모작 중 어느 것 하나 뜨겁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다만 심사자의 입장에서는, 온몸으로 받아낸 자기 체험 없이 손끝으로 매만진 작품의 가벼움은 경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응모작 행간에 스며있는 사유의 농밀함과 시선의 깊이를 찾는 데 주력하였다.
이중 ‘마트료시카’ 외 4편, ‘말, 얇고 두텁고 다순’ 외 4편, ‘버드 세이버’ 외 4편, ‘슬리퍼’ 외 4편, ‘연착’ 외 4편을 시간이 허락하는 마지막까지 두고두고 읽었다.
‘마트료시카’ 외 4편은 사회적 메시지를 자기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개성이 돋보였다. 이미지나 의미를 자기 시의 질서 안에 수렴하는 모습이 안정되어 있으나, 의미가 시의 맥락을 선도하려는 태도가 다소 부자연스러웠다. ‘말, 얇고 두텁고 다순’ 외 4편은 자기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하지만 이미지로 구축된 시적 세계를 지탱해줄 시적 논리가 상대적으로 느슨해서 아쉬움이 컸다. ‘버드 세이버’ 외 4편 역시 흥미로웠다. 시에서 다루는 제재가 현실과 밀착되어 있으되, 시인의 은유를 통해 현실에 종속되지 않고 시적 여지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함께 응모한 작품들이 균등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 못해 전적으로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슬리퍼’ 외 4편은 나름 자신만의 개성적 문법을 만들어내고 있어 눈길이 갔다. 하지만 매 시편에서 반복되듯 드러나는 서술어의 변주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어조는 시에 가장 적절한 것으로 골라야 하는데, 시인의 간섭이 다소 지나치다 싶었다.
결국 당선작으로 ‘연착’ 외 4편을 선정했다. 응모작 5편 모두 오랜 수련의 흔적을 안은 채, 균등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간혹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사유의 발랄함과 시적 대상을 뜨겁고도 냉정한 시선으로 발굴해내는 솜씨가 훨씬 값져 보였다. 당선작은 자전과 공존의 정확한 주기로 재단된 세계 속에서, 오히려 결렬이나 연착을 통해 이루어지는 우리 삶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연출해내고 있다. 사유의 깊이가 남다르고,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자기 방식으로 재해석해내는 과감함이 신인으로서 기대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다만 시를 조금 더 현실로 팽팽하게 끌어당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시인으로 새로운 삶을 얻은 당선자가 세상과 교감하고 독자와 공감할 수 있는, 자기 시를 쓰며 오래오래 버텨주길 응원한다.

김병호(시인·협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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