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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아주경제 보훈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이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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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73회 작성일 2023-07-23 10:58: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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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아주경제 보훈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이지성

■대상

바람 / 이지성

온 산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나무들이 심하게 흔들렸다. 바람이 움켜쥐었다 놓아 버린 이파리들 잠시 치솟더니 죄 구겨져 고꾸라졌다. 먼발치에서 올려다본 산의 어깨가 수척했다. 바람이 쓸어버린 허공도 우묵했다. 마음을 버린 숲이 버석버석 마르고 있었다.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자 일본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시던 증조할아버지, 바람 부는 날 나타나셨다 홀연히 사라지셨다. 할아버지가 왔다 가고 나면 큰 들의 기름진 논, 밤나무 무성한 앞산, 과수원이 하나둘씩 남의 손에 넘어갔다. 바람처럼 사신 할아버지 해방되던 해 한 줌의 유골로 돌아오셨다.

평생을 붓 하나에 의지하며 살아오신 할아버지 한국전쟁 때 동생 둘 나라에 바치고 대대로 살던 고향 떠나와 두고 온 바다 그리울 때면 낚싯대 하나 메고 바닷가로 가셨다. 내게 붓 하나 유산으로 물려주신 할아버지, 거센 바람불던 날 바람이 되어 훨훨 날아가셨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온종일 펜 하나 붙들고 지내던 아버지, 세찬 바람이 불면 바다로 가셨다. 어머니는 그 바람이 잠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거센 바람이 온 세상을 휩쓸고 간 초여름날, 숲에 드러누운 나무처럼 버석 마른 아버지를 본 순간 나도 어머니의 가슴에 영원히 머물지 못하는 바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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