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2025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침목/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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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목/김미정
스위스 빙하 열차의 기울어진 유리잔을 생각했다
버틸 수 있는 각도, 그런 거 있잖아
결빙 구간이 자주 반복되었다
나는 선로를 따라 쩍쩍 갈라지고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물이 되어 몸이 몸으로 늘어지고
완전히 누우면 각진 하늘이, 조금 측면으로 기울이면 삐죽이
솟아있는 아파트 옥상과 낙상주의가 적힌 사물함이 보였다
신은 나를 물속에 둔 채로 자주 자리를 비웠다
그럴 때마다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그 속에 얼굴을 파묻었는데
나랑 같이 있자
사이프러스 큰 나무들은 비켜서 있다
철 지난 비둘기를 부르고 솟대를 걸고 손톱을 물어뜯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열두 번 모으면 사랑해 한번
커튼이 열리면 각자의 성호를 긋고 밥상을 마주하는 사람들
비릿한 철 냄새와 밥 냄새가 섞이고
열차는 제시간에 들어오거나 연착되었다
내 자리는 콘크리트가 대신하고, 폐목이 되어 공원으로
옮겨질 거라는데
부유하는 법을 배운 건 그때부터
신은 나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기다림은 다시 기다림으로 연결된다
누구든 꾹꾹 밟고 지나가길
그렇게 홀가분해지도록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
[2025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유니크한 발상·언어 구성력 뛰어나…삶 원리를 침목 속성에 은유한 가편"
2025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예년에 비해 많은 투고작들이 들어왔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의 긍정적 여파가 예비 문인들의 활황으로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의 내실도 더욱 탄탄해졌는데, 역량 있는 신인들이 이렇게 많은 작품을 응모해준 사실이 매우 기쁘게 다가왔다. 심사위원들은 꽤 많은 작품들이 빼어난 시선과 언어를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이들이 개진한 언어는 시단의 관습이나 주류를 따르지 않고 경험적 구체성을 가지고 있어 이 분들의 정성에 의해 한국 시의 미래가 밝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랜 숙의 끝에 상대적으로 유니크한 발상과 언어적 구성력을 가진 김미정씨의 시편들에 주목하였고, 그의 '침목'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이 시편은 철로에 놓인 침목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을 삶의 깊은 원리로 은유한 가편이다. 그 안에는 기억의 구체성과 함께 오래도록 버티고 갈라지고 기울어지고 낡아온 시간이 담겨 있고, 나아가 타자를 품은 채 내면으로 신성을 안아들이는 과정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나머지 시편들도 균질성을 거느리고 있어서 더욱 성숙한 시편으로 영남일보 신춘문예의 위상을 높여주기를 기대하게끔 해주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예술성과 구체성을 견지한 사례들이 많았다는 점을 기록하고자 한다.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는 타자들을 큰 애정으로 응시한 작품들도 많았는데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더 빛나는 성과를 기대하면서 투고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본심 심사위원 장옥관(시인·계명대 명예교수),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스위스 빙하 열차의 기울어진 유리잔을 생각했다
버틸 수 있는 각도, 그런 거 있잖아
결빙 구간이 자주 반복되었다
나는 선로를 따라 쩍쩍 갈라지고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물이 되어 몸이 몸으로 늘어지고
완전히 누우면 각진 하늘이, 조금 측면으로 기울이면 삐죽이
솟아있는 아파트 옥상과 낙상주의가 적힌 사물함이 보였다
신은 나를 물속에 둔 채로 자주 자리를 비웠다
그럴 때마다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그 속에 얼굴을 파묻었는데
나랑 같이 있자
사이프러스 큰 나무들은 비켜서 있다
철 지난 비둘기를 부르고 솟대를 걸고 손톱을 물어뜯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열두 번 모으면 사랑해 한번
커튼이 열리면 각자의 성호를 긋고 밥상을 마주하는 사람들
비릿한 철 냄새와 밥 냄새가 섞이고
열차는 제시간에 들어오거나 연착되었다
내 자리는 콘크리트가 대신하고, 폐목이 되어 공원으로
옮겨질 거라는데
부유하는 법을 배운 건 그때부터
신은 나를 통과하게 될 것이다
기다림은 다시 기다림으로 연결된다
누구든 꾹꾹 밟고 지나가길
그렇게 홀가분해지도록 나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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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유니크한 발상·언어 구성력 뛰어나…삶 원리를 침목 속성에 은유한 가편"
2025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예년에 비해 많은 투고작들이 들어왔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의 긍정적 여파가 예비 문인들의 활황으로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의 내실도 더욱 탄탄해졌는데, 역량 있는 신인들이 이렇게 많은 작품을 응모해준 사실이 매우 기쁘게 다가왔다. 심사위원들은 꽤 많은 작품들이 빼어난 시선과 언어를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이들이 개진한 언어는 시단의 관습이나 주류를 따르지 않고 경험적 구체성을 가지고 있어 이 분들의 정성에 의해 한국 시의 미래가 밝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랜 숙의 끝에 상대적으로 유니크한 발상과 언어적 구성력을 가진 김미정씨의 시편들에 주목하였고, 그의 '침목'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이 시편은 철로에 놓인 침목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을 삶의 깊은 원리로 은유한 가편이다. 그 안에는 기억의 구체성과 함께 오래도록 버티고 갈라지고 기울어지고 낡아온 시간이 담겨 있고, 나아가 타자를 품은 채 내면으로 신성을 안아들이는 과정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나머지 시편들도 균질성을 거느리고 있어서 더욱 성숙한 시편으로 영남일보 신춘문예의 위상을 높여주기를 기대하게끔 해주었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예술성과 구체성을 견지한 사례들이 많았다는 점을 기록하고자 한다.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는 타자들을 큰 애정으로 응시한 작품들도 많았는데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더 빛나는 성과를 기대하면서 투고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본심 심사위원 장옥관(시인·계명대 명예교수),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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