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민] [2025년 전북도민 신춘문예]임수율/소가 라디오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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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율/소가 라디오를 먹는다
라디오를 켜놓고 소머리를 감긴다
단단한 이빨 속에 곱씹은 풀들이
이끼가 되었다
부릅뜬 눈으로 저녁 너머를 되새김하는,
머리만 남은 소가 싱크대에 식은 울음을 쏟고,
두꺼운 혀와 솟아오른 귀를 씻기다가 나는,
한 줄기 바람이 되기도 하고
익을수록 쫑긋해지는 귀에서 흘러나오는
천둥소리, 풀벌레 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우우 끓는 한낮
뽀얗게 우러난 사태를 국자로 휘휘 젓는다
씹을 때마다 혓바닥이 입천장에 붙어 쩝쩝거리는
국밥 속에서 흰 눈 밟는 소리도 들은 것 같아,
발 담근 소의 냇물과 옥수수, 질경이, 개망초와
억새를 꾸역꾸역 건져 먹는다
소 울음소리에 주파수 맞추면,
라디오는 소와 놀던 풀밭의 새들과
꽃잎 열리는 소리를 쏟아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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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임수율 씨 소감
오래 잤습니다. 햇빛이 암막 커튼 속에서 기어 나와 동공을 건드려도 자는 척 누워있었습니다. 머리맡엔 어둠이 흩트려 놓은 A4 용지도 납작 엎드려 자는 것 같았습니다. 깨어나면 작별의 슬픔이 날카로워서 나는 계속 커튼 속에 숨어있기로 했습니다. 이 별은 사람만 아픈 게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시를 배반하기로 한 밤과 늦은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전화기는 언제나 기습적으로 울어 재치고, 잠결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했지만, 목이 잠겼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지난 계절 폭폭 고아 먹은 소 울음소리가 비집고 나왔습니다. 난생처음 산타가 찾아온 아침이었습니다. 반가움에 목이 잠겼고 정신이 들자 두려움이 부풀었습니다. 그 떨림을 앞세워 나는 시의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엄동에 돌아온 자리, 쉬이 불이 들지 않지만 따뜻해지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시를 등지려던 순간 파랗게 언 손 잡아준 손,‘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당선 소식이었습니다. 마음 붙잡아주시고 이름 곁에 시인이란 새 이름 붙여주신 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듣고, 꾸준히 바라보면서, 사물에서 못다 들은 말에 귀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들 받아 적겠습니다.
감히 부르기도 벅찬 이름 많습니다. 시와 만나게 해주셨던‘시와 찻잔’백담 김희광 선생님, 꼬인 문장과 사유를 풀어주시려 따끔한 가르침 주신 김산 선생님과‘문장 강화’문우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마경덕 선생님과‘솜다리 문학’을 알찬 강의로 열매 맺게 하시는 전문수 교수님 감사합니다. 더불어 가족 같은‘모던포엠 시나무’동인들‘詩.作.시그널’과‘시좌’‘시납’‘문장콘서트’문우님들 고맙습니다. 시 앓이에 몰두한 나를 지지해 주는 내 삶의 은인과 하늘에 계신 부모님 고맙고 사랑합니다. 특히 암 투병도 이겨낸 아들, 친구 같은 딸 나의 빛, 영광의 자리에서 불러본다. 그리고 만학도의 꿈을 돕는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 담임이셨던 성열호 선생님 “넌 꼭 글을 쓰라”시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더불어서 저를 기어이 살게 했던 어둠과 물 자국들까지 고맙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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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이질적인 소재를 서두르지 않고 안내하는 내공”
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는 작년보다 응모 편수가 상당히 많았다. 심사를 하는 일이 한국 시단의 가능성 내지는 응모자 개개인의 잠재태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해서 기쁜 과정이었다.
수백 편의 심사 대상 작품에는 시적 구성과 긴밀도 문장을 다루는 솜씨가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반면에 작품의 흐름에 상관없이 어려운 문장이나 어울리지 않는 수사를 끼워놓은 듯한 응모작도 좀 있었다.
이번 심사의 요목은 응모한 편수가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첫 번째였다. 이는 응모자가 앞으로 이룰 시적 성취를 가늠해보는 일이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신춘문예 응모작다운 패기나 당돌한 상상력 등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까지 남은 작품은 이인희의 ‘우산, 날개를 펴고’와 신양옥의 ‘망설이는 동안’, 임수율의 ‘소가 라디오를 먹는다’와 신동신의 ‘벽의 문진’ 그리고 이영화의 ‘소금이 오다’였다.
다섯 분의 작품을 반복해서 읽었다. 최종까지 남은 작품은 임수율의 ‘소가 라디오를 먹는다’였다. 같이 보내온 ‘그릇을 읽는다’도 수작이었다. 둘 중 한 작품을 고르는 일은 어려웠다. 쉽게 읽히지만은 않겠다는 불통과 술술 읽히는 소통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신춘문예라는 특성을 참작하여 ‘소가 라디오를 먹는다’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소가 라디오를 먹는다’는 우리가 흔히 먹는 소머리 국밥 한 그릇이 얼마나 많은 과정으로 완성되는가와 소머리 국밥 한 그릇 속에는 얼마나 많은 과거가 들어있는지 차근차근 짚어보게 한다. 과정과 과거를 다 겪어내고 내게로 온 소머리 국밥 한 숟가락이 신앙처럼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소’와 ‘라디오’라는 이질적인 소재 둘을 연결하는 과정을 작가는 서두르지 않고 소처럼 느릿느릿 안내하는 내공도 지녔다. 또한, 소의 상징이 얼마든지 확장될 여지를 남겨둔 채로 이 작품을 마무리했다. 심지어 작품 안에서 약간 터덕거리는 수사나 연결조차 작가가 의도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오래 정진하시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김영(시인, 석정문학회 회장)
라디오를 켜놓고 소머리를 감긴다
단단한 이빨 속에 곱씹은 풀들이
이끼가 되었다
부릅뜬 눈으로 저녁 너머를 되새김하는,
머리만 남은 소가 싱크대에 식은 울음을 쏟고,
두꺼운 혀와 솟아오른 귀를 씻기다가 나는,
한 줄기 바람이 되기도 하고
익을수록 쫑긋해지는 귀에서 흘러나오는
천둥소리, 풀벌레 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우우 끓는 한낮
뽀얗게 우러난 사태를 국자로 휘휘 젓는다
씹을 때마다 혓바닥이 입천장에 붙어 쩝쩝거리는
국밥 속에서 흰 눈 밟는 소리도 들은 것 같아,
발 담근 소의 냇물과 옥수수, 질경이, 개망초와
억새를 꾸역꾸역 건져 먹는다
소 울음소리에 주파수 맞추면,
라디오는 소와 놀던 풀밭의 새들과
꽃잎 열리는 소리를 쏟아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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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임수율 씨 소감
오래 잤습니다. 햇빛이 암막 커튼 속에서 기어 나와 동공을 건드려도 자는 척 누워있었습니다. 머리맡엔 어둠이 흩트려 놓은 A4 용지도 납작 엎드려 자는 것 같았습니다. 깨어나면 작별의 슬픔이 날카로워서 나는 계속 커튼 속에 숨어있기로 했습니다. 이 별은 사람만 아픈 게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시를 배반하기로 한 밤과 늦은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전화기는 언제나 기습적으로 울어 재치고, 잠결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소리를 가다듬으려 했지만, 목이 잠겼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지난 계절 폭폭 고아 먹은 소 울음소리가 비집고 나왔습니다. 난생처음 산타가 찾아온 아침이었습니다. 반가움에 목이 잠겼고 정신이 들자 두려움이 부풀었습니다. 그 떨림을 앞세워 나는 시의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엄동에 돌아온 자리, 쉬이 불이 들지 않지만 따뜻해지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시를 등지려던 순간 파랗게 언 손 잡아준 손,‘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당선 소식이었습니다. 마음 붙잡아주시고 이름 곁에 시인이란 새 이름 붙여주신 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듣고, 꾸준히 바라보면서, 사물에서 못다 들은 말에 귀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들 받아 적겠습니다.
감히 부르기도 벅찬 이름 많습니다. 시와 만나게 해주셨던‘시와 찻잔’백담 김희광 선생님, 꼬인 문장과 사유를 풀어주시려 따끔한 가르침 주신 김산 선생님과‘문장 강화’문우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마경덕 선생님과‘솜다리 문학’을 알찬 강의로 열매 맺게 하시는 전문수 교수님 감사합니다. 더불어 가족 같은‘모던포엠 시나무’동인들‘詩.作.시그널’과‘시좌’‘시납’‘문장콘서트’문우님들 고맙습니다. 시 앓이에 몰두한 나를 지지해 주는 내 삶의 은인과 하늘에 계신 부모님 고맙고 사랑합니다. 특히 암 투병도 이겨낸 아들, 친구 같은 딸 나의 빛, 영광의 자리에서 불러본다. 그리고 만학도의 꿈을 돕는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 담임이셨던 성열호 선생님 “넌 꼭 글을 쓰라”시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더불어서 저를 기어이 살게 했던 어둠과 물 자국들까지 고맙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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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이질적인 소재를 서두르지 않고 안내하는 내공”
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는 작년보다 응모 편수가 상당히 많았다. 심사를 하는 일이 한국 시단의 가능성 내지는 응모자 개개인의 잠재태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해서 기쁜 과정이었다.
수백 편의 심사 대상 작품에는 시적 구성과 긴밀도 문장을 다루는 솜씨가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반면에 작품의 흐름에 상관없이 어려운 문장이나 어울리지 않는 수사를 끼워놓은 듯한 응모작도 좀 있었다.
이번 심사의 요목은 응모한 편수가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첫 번째였다. 이는 응모자가 앞으로 이룰 시적 성취를 가늠해보는 일이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신춘문예 응모작다운 패기나 당돌한 상상력 등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까지 남은 작품은 이인희의 ‘우산, 날개를 펴고’와 신양옥의 ‘망설이는 동안’, 임수율의 ‘소가 라디오를 먹는다’와 신동신의 ‘벽의 문진’ 그리고 이영화의 ‘소금이 오다’였다.
다섯 분의 작품을 반복해서 읽었다. 최종까지 남은 작품은 임수율의 ‘소가 라디오를 먹는다’였다. 같이 보내온 ‘그릇을 읽는다’도 수작이었다. 둘 중 한 작품을 고르는 일은 어려웠다. 쉽게 읽히지만은 않겠다는 불통과 술술 읽히는 소통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신춘문예라는 특성을 참작하여 ‘소가 라디오를 먹는다’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소가 라디오를 먹는다’는 우리가 흔히 먹는 소머리 국밥 한 그릇이 얼마나 많은 과정으로 완성되는가와 소머리 국밥 한 그릇 속에는 얼마나 많은 과거가 들어있는지 차근차근 짚어보게 한다. 과정과 과거를 다 겪어내고 내게로 온 소머리 국밥 한 숟가락이 신앙처럼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소’와 ‘라디오’라는 이질적인 소재 둘을 연결하는 과정을 작가는 서두르지 않고 소처럼 느릿느릿 안내하는 내공도 지녔다. 또한, 소의 상징이 얼마든지 확장될 여지를 남겨둔 채로 이 작품을 마무리했다. 심지어 작품 안에서 약간 터덕거리는 수사나 연결조차 작가가 의도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오래 정진하시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 김영(시인, 석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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