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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일보] [202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화산리 보물선/이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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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02회 작성일 2025-01-29 16:04:0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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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리 보물선/이수하

그가 어떤 파랑도 타고 넘는 보물선을 만든다
담벼락 밖으로 삐져나온 보일러 연통은 좌표
개나리 꽃가지는 방위를 살피는 나침반이다
턱선의 땀방울을 향해 양어깨가 번갈아 오가며
오후를 스패너로 조인다
기름통을 싣고 와 기계실에 연결했으니
골목에서 얻은 메트리스를 선실 바닥으로 삼고
커튼은 돛으로 쓴다
눈썹에 와닿는 입김
문턱에 가는 실금 따라 살얼음이 생긴다
아귀가 맞지 않는 곳에서 갈매기 울음이 새어 나온다
유모차는 뭐 하려고?
엄마를 밀고 가려고
부러진 선풍기는 내놓아야지
거기 푸드덕 새가 살아
의자는 도로 갖다 놔 애들도 올 텐데
발 뻗을 곳이 없잖아
그는 제 식구 찾아가겠다고
삐걱대는 의자를 타고 헌 옷가지들 챙긴다
의자 다리가 구부러진 못을 물고 기우뚱거린다
잠가도 들리는 물 흐르는 소리
쇠 파이프의 긴 그림자가 기울어지는 들보를 받쳐 든다
나무 벌레 구멍 속에서 금가루 같은 햇볕 쏟아내면
갯벼룩이 기어 나온다
벼락바람이 불고
얼룩무늬 골목이 스멀스멀 방문을 밀쳐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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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꿈결 속에서도 글귀 하나 쥐고

아버지 산소 가는 길에 보았습니다. 환삼덩굴이 칭칭 감아 오른 나무를. 환삼덩굴이나 사위질빵 덩굴이 나무를 오르며 촘촘한 그물을 짜기에 작은 새들이 비바람과 천적을 피해 살아갑니다.

당선 전화를 받고 그 나무가 내 안에 들어옵니다. 이른 새 떼가 날아오릅니다. 기쁨 반 무거움 반 섞인 어깻숨을 쉽니다.

입구가 긴 병 속이라 생각했던 삶이 시를 쓰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집안일을 하다 물 묻은 손을 닦고서, 길을 걷다 어느 집 담장 밑에 서서 내게 온 문장을 놓칠세라 휴대전화에 메모했습니다. 꿈결 속에서도 글귀 하나 쥐고 잠을 들락거렸습니다.

독이 든 열매를 먹고 비상하는 새처럼 부자유한 상황을 디딤판으로 시를 쓰겠습니다. 돌멩이 하나를 꼭 쥐어봅니다. 어딘가에 굄돌같이 제 시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의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보다 기뻐하실 분들이 떠오릅니다. 내 안으로 침몰하지 않게 칭찬과 격려를 해주신 존경하는 이승하 교수님. 오랜 인연이었던 동작 문학반 맹문재 교수님 끝까지 도움을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기대에 대한 마음의 빚을 조금은 갚은 것 같습니다. 굽은 터널이라 느낄 때 불빛이 되어주신 나비족장 박지웅 선생님과 이경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랜 습작기 동안 좋은 인연으로 만났던 선생님들과 문우들 모두 감사합니다. 미완성 나의 시 당신과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수하(본명 이선행) 시 부문 당선자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 창작 전문가과정 3년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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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감춰진 현상 연관 따스한 시선···자연과 사물 신진대사 돋보여

시는 어디까지나 고착화되고 부절절한 이미지와의 싸움이다. 특히 그런 까닭에 깊이도, 유연성도 없는 동어 반복적이고 고정화된 이미지들의 반복과 재현은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해야할 시적 상상력을 질식시키는 조종(弔鐘)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상투적 세계인식은 우리에게 생각의 자유와 사유의 지평을 제한하는 악마적인 속삭임인 까닭이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구현해나가기에도 바쁜 우리의 존재를 다시금 순응과 훈육의 대상으로 길들여 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디까지나 시는 그동안 우리가 믿거나 당연시해온 것들을 한정 짓거나 상대화하기보다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의 관계 맺기다. 특히 기존의 그 어떠한 담론이나 이념의 틀로 가둘 수 없는, 매우 다양하고 자유로운 언어적 유기체가 다름 아닌 시의 세계이다. 필시 과 에 대한 반복적인 질문과 회의, 의심과 반격이 시의 교두보이자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새로운 시인들의 출발점인 셈이다.

경향각지의 총 220여명의 951편의 응모작들 가운데 최종심에 오른 「럭키」외 2편과 「화산리 보물선」외 2편의 응모작들은 이러한 기준과 원칙에 부합되었다고나 할까. 먼저 「럭키」의 이른바 '세월호 대참사'를 배경으로 한 자유롭고 활달한 재난적 상상력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기존의 주제의식이나 고루한 기법에 얽매이지 않는 점들이 눈에 띄었다, 다만 시적 집중도와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아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솔직히 과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시인될 수 있을까, 일말의 우려와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한 「화산리 보물선」의 경우 응모작들 가운데 가장 안정되고 차분한 시적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가상의 '보물선'을 완성해가는 작업의 과정에서 드러나거나 감추어진 일체의 현상을 이리저리 연관시켜 가는 따스한 시선 아래, 각기의 자연과 사물들이 단지 시적 부품이 아니라 엄연한 활물(活物)로 활발하게 신진대사하는 모습이 돋보여 당선작으로 결정했음을 여기 밝혀둔다.

응모자들 모든 분들께 큰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 오래 절차탁마의 시간을 보냈을 당선자에게도 큰 축하와 문운의 인사를 전한다.임동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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