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일보] [2025년 광남일보 신춘문예]아오키가하라*/이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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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가하라*/이지우
외로움이란 자꾸 발견되는 이상기후
나는 지금부터 나를 고백하는 것으로
숲에 도달할 수 있다
여름이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어떤 날, 나는 스스로를 바꿔 보기로 했다 노력과 사랑을 뒤섞어서
밥과 함께 삼켜 보기로 했다 문장 속으로 회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새벽을 참 좋아하고
이것은 글로 포기할 마음을 먹는다는 것
창 너머로는 고장난 실외기가 소음 없이 돌아간다
다리 사이로 차오르는 땀과 찝찝함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이
내게는 있다
사람이 너무 좋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안한 마음이 지속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녹아버린 빙하처럼
외로움은 누군가가 주목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중요해지는 것이다
나는 선풍기로 외로운, 혼자인, 함께는 불가능한 스스로를 견뎌낸다 곧이어 풀과 꽃을 기록했다
푸르다, 푸른 것이다 나무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죽어간다
아직 나 살아있어요,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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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소감
오로지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창작
이지우
처음 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부터 지금까지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항상 바라던 것이었음에도 손에 쥐어지니 만져지지가 않아 곤란한 기분입니다. 당선을 축하해 주는 친구의 울먹임이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일주일 전에 피를 흘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온몸에서 솟구치는 피를 내뱉으며 울었는데, 그 울음이 제가 쏟을 눈물을 미리 쏟아 주었다 생각이 듭니다.
항상 무기력함에 이끌려 방에 박혀 있던 제가 활력을 되찾은 건, 중학생 때 홀로 글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였습니다. 단지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어 쓰기 시작한 제가, 이 활자를 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생각하다보면 마음이 가느다라지는 것만 같은 감각에 저는 창문을 열고 겨울 바람을 맞습니다. 다시 마음을 부풀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어떤 것이든 단면을 들여다보면 어둡고 축축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슬리퍼 밑창처럼 죽죽 끌어당겨지는 슬픔도, 몸 이곳저곳에서 숨쉬는 흉터들의 분주함도 나의 단면의 일부입니다. 쓰고 읽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단면에 숨겨진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싶기도 합니다. 세계의 단면에는 과거와 미래가 있고, 여름의 이중성이 있으며, 살다와 살아간다가 혼동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면들은 감각이 되고, 비유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들을 자주 하며 글을 썼습니다.
오로지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곳까지 발을 올렸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기대되면서도 두려운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예창작과라는 곳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제 하나뿐인 선생님, 내가 살아있도록 마음을 준 친구들, 외로울 때마다 소통해 주던 책들…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 차오릅니다. 제 당선 소감을 읽으시는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시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신 많은 분들과 읽게 되실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약력
△서울 출생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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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언어·감정·의미 잘 다스려…시적 짜임새 좋다
정끝별(시인·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한 편의 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언어와 감각과 사유와 통찰을 풀고 맺고 잇대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기와의 싸움을 견뎌내야 하는 걸까? 응모된 1200편이 넘는 공들여 쓴 시들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었다. 다양한 세대의 ‘일상과 시화’라 할 만한, 우리 삶 속에 시가 있다는 서정시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 경향은 크게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한 생활고, 늙음과 질병으로 인한 돌봄과 죽음,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풍자, 그리고 구어나 방언에 담긴 모어의 시적 실현으로 나뉘었다.
특히 한강의 노벨상 수상식이나 비상계엄령 선포 등을 시제로 다룬 시들도 간간이 있었는데, 시대의 첨예한 첨병으로서의 시의 역할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예비 시인들의 시를 읽는다는 건 늘 기껍고 설레는 일이다. 거기에는 우리 시의 과거와 미래, 그러니까 정전화된 시적인 것과 가능태로서의 시적인 것이 충돌하면서 내뿜는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뭉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가 무엇이었고, 미래의 시가 무엇이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담보하는 시들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신인에게 기대하는 시적 에너지로서의 열도(熱度), 시적 도전으로서의 신선도(新鮮度), 그리고 시적 훈련으로서의 완성도(完成度) 또한 심사의 기준이었다. 자신의 체험이나 현실적 서사에 함몰되어 시적 긴장과 응집력을 놓치는 작품들을 먼저 놓았다.
최종적으로 시적 개성이 뚜렷한 네 분의 작품이 남았다. ‘순환도로’ 외 4편은 순환도로, 회전교차로, 콘크리트, 주차선, 바퀴와 같은 도시 문명의 상징적 오브제들을 통해 도시인의 삶을 통찰한다. 굵고 간결한 직진의 시적 사유와 그 전개에 호감이 갔다. ‘나무 안에 소리가 산다’ 외 4편은 서정적 통찰을 발견의 묘사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 쓰기의 연륜이 읽혔다. 잘 조율되고 다듬어진 고백의 숨결이 자연스럽게 독자를 끌어당기곤 했다. 그러나 이 두 분의 시편들에서 아쉬웠던 것은 신인에게 기대하는 시적 도전으로서의 새로움이었다.
‘테트라포드’ 외 4편은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던 작품이다. 사물의 물질성과 구도를 투시하는 감각과 사유를 현실과 잇대 놓는 튼실한 연결고리가 미덕이었다. 그러나 다소 설명적이었던 다른 작품들과의 편차가 아쉬웠다.
최종적으로 ‘아오키가하라’ 외 4편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언어와 감정과 의미를 다루고 다스릴 줄 안다는 믿음이 갔다. 그것들을 엮는 시적 짜임새에 군더더기가 없고, 감각과 상상력은 물론 시적 시선이 새로웠다. “외로움이란 자꾸 발견되는 이상기후”, “외로움은 누군가가 주목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처럼, 감정과 의미와 묘사와 통찰이 어우러진 밑줄을 긋고 싶은 발견의 문장들 또한 매혹적이었다.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균질하면서 안정된 시적 열도와 완성도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비록 당선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최종 심사 대상자를 비롯해 응모자 모두에게 힘찬 정진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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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란 자꾸 발견되는 이상기후
나는 지금부터 나를 고백하는 것으로
숲에 도달할 수 있다
여름이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어떤 날, 나는 스스로를 바꿔 보기로 했다 노력과 사랑을 뒤섞어서
밥과 함께 삼켜 보기로 했다 문장 속으로 회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새벽을 참 좋아하고
이것은 글로 포기할 마음을 먹는다는 것
창 너머로는 고장난 실외기가 소음 없이 돌아간다
다리 사이로 차오르는 땀과 찝찝함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이
내게는 있다
사람이 너무 좋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안한 마음이 지속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녹아버린 빙하처럼
외로움은 누군가가 주목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중요해지는 것이다
나는 선풍기로 외로운, 혼자인, 함께는 불가능한 스스로를 견뎌낸다 곧이어 풀과 꽃을 기록했다
푸르다, 푸른 것이다 나무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죽어간다
아직 나 살아있어요,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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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소감
오로지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창작
이지우
처음 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부터 지금까지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항상 바라던 것이었음에도 손에 쥐어지니 만져지지가 않아 곤란한 기분입니다. 당선을 축하해 주는 친구의 울먹임이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일주일 전에 피를 흘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온몸에서 솟구치는 피를 내뱉으며 울었는데, 그 울음이 제가 쏟을 눈물을 미리 쏟아 주었다 생각이 듭니다.
항상 무기력함에 이끌려 방에 박혀 있던 제가 활력을 되찾은 건, 중학생 때 홀로 글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였습니다. 단지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어 쓰기 시작한 제가, 이 활자를 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생각하다보면 마음이 가느다라지는 것만 같은 감각에 저는 창문을 열고 겨울 바람을 맞습니다. 다시 마음을 부풀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어떤 것이든 단면을 들여다보면 어둡고 축축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슬리퍼 밑창처럼 죽죽 끌어당겨지는 슬픔도, 몸 이곳저곳에서 숨쉬는 흉터들의 분주함도 나의 단면의 일부입니다. 쓰고 읽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단면에 숨겨진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싶기도 합니다. 세계의 단면에는 과거와 미래가 있고, 여름의 이중성이 있으며, 살다와 살아간다가 혼동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단면들은 감각이 되고, 비유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들을 자주 하며 글을 썼습니다.
오로지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곳까지 발을 올렸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기대되면서도 두려운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예창작과라는 곳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제 하나뿐인 선생님, 내가 살아있도록 마음을 준 친구들, 외로울 때마다 소통해 주던 책들…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 차오릅니다. 제 당선 소감을 읽으시는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시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신 많은 분들과 읽게 되실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약력
△서울 출생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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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언어·감정·의미 잘 다스려…시적 짜임새 좋다
정끝별(시인·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한 편의 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언어와 감각과 사유와 통찰을 풀고 맺고 잇대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기와의 싸움을 견뎌내야 하는 걸까? 응모된 1200편이 넘는 공들여 쓴 시들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었다. 다양한 세대의 ‘일상과 시화’라 할 만한, 우리 삶 속에 시가 있다는 서정시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 경향은 크게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한 생활고, 늙음과 질병으로 인한 돌봄과 죽음,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풍자, 그리고 구어나 방언에 담긴 모어의 시적 실현으로 나뉘었다.
특히 한강의 노벨상 수상식이나 비상계엄령 선포 등을 시제로 다룬 시들도 간간이 있었는데, 시대의 첨예한 첨병으로서의 시의 역할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예비 시인들의 시를 읽는다는 건 늘 기껍고 설레는 일이다. 거기에는 우리 시의 과거와 미래, 그러니까 정전화된 시적인 것과 가능태로서의 시적인 것이 충돌하면서 내뿜는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뭉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 현재의 시가 무엇이었고, 미래의 시가 무엇이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담보하는 시들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신인에게 기대하는 시적 에너지로서의 열도(熱度), 시적 도전으로서의 신선도(新鮮度), 그리고 시적 훈련으로서의 완성도(完成度) 또한 심사의 기준이었다. 자신의 체험이나 현실적 서사에 함몰되어 시적 긴장과 응집력을 놓치는 작품들을 먼저 놓았다.
최종적으로 시적 개성이 뚜렷한 네 분의 작품이 남았다. ‘순환도로’ 외 4편은 순환도로, 회전교차로, 콘크리트, 주차선, 바퀴와 같은 도시 문명의 상징적 오브제들을 통해 도시인의 삶을 통찰한다. 굵고 간결한 직진의 시적 사유와 그 전개에 호감이 갔다. ‘나무 안에 소리가 산다’ 외 4편은 서정적 통찰을 발견의 묘사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시 쓰기의 연륜이 읽혔다. 잘 조율되고 다듬어진 고백의 숨결이 자연스럽게 독자를 끌어당기곤 했다. 그러나 이 두 분의 시편들에서 아쉬웠던 것은 신인에게 기대하는 시적 도전으로서의 새로움이었다.
‘테트라포드’ 외 4편은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던 작품이다. 사물의 물질성과 구도를 투시하는 감각과 사유를 현실과 잇대 놓는 튼실한 연결고리가 미덕이었다. 그러나 다소 설명적이었던 다른 작품들과의 편차가 아쉬웠다.
최종적으로 ‘아오키가하라’ 외 4편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언어와 감정과 의미를 다루고 다스릴 줄 안다는 믿음이 갔다. 그것들을 엮는 시적 짜임새에 군더더기가 없고, 감각과 상상력은 물론 시적 시선이 새로웠다. “외로움이란 자꾸 발견되는 이상기후”, “외로움은 누군가가 주목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처럼, 감정과 의미와 묘사와 통찰이 어우러진 밑줄을 긋고 싶은 발견의 문장들 또한 매혹적이었다.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균질하면서 안정된 시적 열도와 완성도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비록 당선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최종 심사 대상자를 비롯해 응모자 모두에게 힘찬 정진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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