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2016] 스티커/ 이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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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이명우
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뜯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붙는 스티커를 뜯다가
스티커 뜯기를 멈추고 산동네를 떠났다
멈추고 떠날 때는 다 지운 것이어서
지운 것은 없는 것이어서
없는 여기 산동네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 몰랐다
대문을 겹겹이 도배한 스티커 화려하기조차 했다
긁히고 찢긴 조금도 아물지 않는 가업
허파와 심장과 위장이 모두 철대문에 붙어
겨울 냉기를 고스란히 빨고 팽팽해졌다
추락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력서를 쓰고 찢고 쓰고 찢었던 것
부도난 회사의 대표였던 이력은
지급기일을 넘긴 어음처럼 휴지였던 것
부도를 막기 위해 오래전에 빌린 사채가 펄럭이며 휴지를
산동네 꼭대기까지 얼마나 난타해댔던가
골목을 돌며 전봇대 기둥과 자주 부딪친다
골목에는 늘 똑같은 소리로 이자가 와 달라붙는다
눈치 없는 거미줄에 발걸음에 와 걸린다
발이라도 와 걸어주는 이것이 거미줄의 눈치
잠만자는직장여성환영 오십세이상알바모집 선원大모집
배달부즉시출근가능 일수당일대출 신용불량자도대출可
얼어붙은 전봇대를 덮이는 환영, 가능, 대박,
대문에 붙어서 스티커를 뜯어내고 있는 아들이 보인다
컴퓨터 게임 대신 싫증 모르는 스티커 뜯기 놀이
경첩이 떨어지려는 대문을 어서 받쳐보려는데
어제까지 떼어낸 적색 신불자대환영 스티커가
어린 아들의 등에 세습처럼 붙어 있다
심사평
삶 현실감 있게 보여준 공감 능력 높이 평가
한국 문단의 새 별이 되기 위해 시 부문에 응모한 이들의 연령층은 20대에서 60대에 걸쳐 있었고, 지역은 전국적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참으로 많았다.
332명 응모자의 숫자만큼 작품의 우열도 편차가 컸다. 시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작품에서부터, 기성의 시를 초극해보고자 하는 의욕에 넘친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시편까지 다양했다. 이들을 두고 시의 응축적인 구성력, 개성적인 상상력, 이미지화의 능력, 그리고 리듬 의식이 잘 융합된 빛나는 별이 될 작품을 골라내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1, 2차의 거름을 통해 남겨진 작품들은 수준작이 많아 심사자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했다.
본격적인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황미현의 '다랑어 도마氏', 이은주의 '개인별 오아시스', 종이정의 '묵화', 이윤하의 '4분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 이명우의 '스티커' 등이었다. 이들은 앞으로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황미현 이은주 종이정 3명은 투고된 다른 작품들이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과 같은 높이의 수준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윤하의 '4분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와 이명우의 '스티커'가 최종 논의 대상이 되었다.
전자는 개성적인 상상력이 장점으로, 후자는 삶의 진정성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공감력이 높이 평가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고단한 오늘의 삶을 무리 없이 이미지화한 후자에 심사위원 모두가 더 공감하여, 이를 당선작으로 밀었다. 새로운 별이 된 것을 축하하며, 큰 별로 성장해 나가길 빈다.
남송우 문학평론가, 박남준 안상학 시인
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뜯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붙는 스티커를 뜯다가
스티커 뜯기를 멈추고 산동네를 떠났다
멈추고 떠날 때는 다 지운 것이어서
지운 것은 없는 것이어서
없는 여기 산동네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 몰랐다
대문을 겹겹이 도배한 스티커 화려하기조차 했다
긁히고 찢긴 조금도 아물지 않는 가업
허파와 심장과 위장이 모두 철대문에 붙어
겨울 냉기를 고스란히 빨고 팽팽해졌다
추락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력서를 쓰고 찢고 쓰고 찢었던 것
부도난 회사의 대표였던 이력은
지급기일을 넘긴 어음처럼 휴지였던 것
부도를 막기 위해 오래전에 빌린 사채가 펄럭이며 휴지를
산동네 꼭대기까지 얼마나 난타해댔던가
골목을 돌며 전봇대 기둥과 자주 부딪친다
골목에는 늘 똑같은 소리로 이자가 와 달라붙는다
눈치 없는 거미줄에 발걸음에 와 걸린다
발이라도 와 걸어주는 이것이 거미줄의 눈치
잠만자는직장여성환영 오십세이상알바모집 선원大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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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전봇대를 덮이는 환영, 가능, 대박,
대문에 붙어서 스티커를 뜯어내고 있는 아들이 보인다
컴퓨터 게임 대신 싫증 모르는 스티커 뜯기 놀이
경첩이 떨어지려는 대문을 어서 받쳐보려는데
어제까지 떼어낸 적색 신불자대환영 스티커가
어린 아들의 등에 세습처럼 붙어 있다
심사평
삶 현실감 있게 보여준 공감 능력 높이 평가
한국 문단의 새 별이 되기 위해 시 부문에 응모한 이들의 연령층은 20대에서 60대에 걸쳐 있었고, 지역은 전국적이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참으로 많았다.
332명 응모자의 숫자만큼 작품의 우열도 편차가 컸다. 시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작품에서부터, 기성의 시를 초극해보고자 하는 의욕에 넘친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시편까지 다양했다. 이들을 두고 시의 응축적인 구성력, 개성적인 상상력, 이미지화의 능력, 그리고 리듬 의식이 잘 융합된 빛나는 별이 될 작품을 골라내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1, 2차의 거름을 통해 남겨진 작품들은 수준작이 많아 심사자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했다.
본격적인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황미현의 '다랑어 도마氏', 이은주의 '개인별 오아시스', 종이정의 '묵화', 이윤하의 '4분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 이명우의 '스티커' 등이었다. 이들은 앞으로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황미현 이은주 종이정 3명은 투고된 다른 작품들이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과 같은 높이의 수준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윤하의 '4분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와 이명우의 '스티커'가 최종 논의 대상이 되었다.
전자는 개성적인 상상력이 장점으로, 후자는 삶의 진정성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공감력이 높이 평가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고단한 오늘의 삶을 무리 없이 이미지화한 후자에 심사위원 모두가 더 공감하여, 이를 당선작으로 밀었다. 새로운 별이 된 것을 축하하며, 큰 별로 성장해 나가길 빈다.
남송우 문학평론가, 박남준 안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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