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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2006] 개성집 /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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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26회 작성일 2024-09-26 20:25:4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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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집 / 김명희

내 유년 가까운 곳에는 개성집이라는 술집이 있었다
늙은 작부 하나가 있었고 아버지 부랑의 날들이 있었다
붉은 입술에 검은 점,
저녁이면 문득 툇마루 끝에 걸리던 속살 속의 노을,
개성집은 우리들의 적이었다
밤이 깊으면
낡은 송학표 주전자가 시끄럽게 장단을 이끌어주던
검은 루핑 지붕 밑에서 아버지는 몇 날 며칠을 머물렀다
아교처럼 단단한 아버지의 편력은 여름내 계속되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에게 떠밀려 그곳을 들르곤 했다
돌아오는 길엔 누깔사탕과 은전 한 잎이 내 안으로 넣어졌고
나는 사탕이 다 녹기도 전 어머니에게 둘러댈 붉은 변명들을
입 안 한 켠에 감춰야만 했다
그.게.슬.픔.인.지.도.모.르.고

어린시절 내 슬픔 가까운 곳엔 개성집이라는 유곽이 있었다
아카시아는 밤마다 멀미처럼 부풀어올랐고
저녁의 라디오 속에선 붉고 격양된 노래들이 꽃잎처럼 쏟아져
나왔다
조팝꽃이 끝나면,
한낮의 길엔 양산을 쓴 여인 하나 가볍게 스치었고
그런 날 어머니의 가슴은, 해가 지고 오랜 뒤에도
쉽사리 저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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