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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 [2016] 정자나무를 품다/ 염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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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27회 작성일 2024-09-24 15:44: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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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를 품다/ 염병기
 
내 고향

동구 밖
수백 살 나이에 지난 세월 움켜쥔 늙은 정자나무는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이다

고향 길에
어김없이 지나야 하는 그 곳은
돌담 길에 호박 엮이듯
어릴 적 추억들도 걸려 있다

옹기종기 모여 동네의 쉼터로
부초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풍문으로 떠돌던 이끼 낀 세월의 얘기도 묻혀 있고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으로 바라본다

만만치 않은 세상, 삶이 고달플 때
의연함으로 시절을 버틴 정자나무는
살아온 날에 대한 다독임
살아갈 날에 대한 묵묵함으로 속마음을 대신한다

한 움큼씩 안고 사는 시린 사연도
송두리째 흔들렸던 삶의 모습에도
지나온 세파에 견딘 세월의 약(藥)으로
그 앞에서면 살포시 봄눈 녹듯 치유가 된다
   
고향 정자나무에서 느끼는 바람결
한 자락 쓸어 담아 가슴에 품는다
말 없는 살랑거림은 존재 의미를 더 하고
굳건함은 의지에 다시 일어나 시작할 마음을 부추긴다

​심사평

자기숨결의 정체성 찾기 능력 돋보여

 이번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472편)을 읽고 대부분의 시작들이 다양하고 나름대로의 개성과 새롭고 탄탄한 시세계가 엿보이기도 하였으나 아직도 신인문학상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전효정의 ‘골목의 어둠’과, 김회권의 ‘엎어진 개밥그릇’과, 허은규의 ‘삼거리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 그리고 염병기의 ‘정자나무를 품다’란 작품이다.
  전효정은‘골목의 어둠’이란 작품에서 밤의 골목은 저만의 어둠과, 낡은 시멘트벽엔 덕지덕지 광고지가 회색빛으로 물든 골목과 화자, 백열등의 불빛과 밤벌레의 유혹, 그 어둠이, 옹크린 골목에 백열등을 통해서 또 다른 희망이란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김회권의 ‘엎어진 개밥그릇’은 토방 아래 달싹 엎어진 개밥그릇을 백구 한 마리가 반나절 넘게 자기의 밥그릇을 일으켜 세우려고 입으로 물고 제쳐도 뒤집어지지 않는 막사발을 일으켜 보았자 뜨거운 공기만 고봉으로 담겨져 있을 터인데 자기 밥그릇을 위한 발버둥치기행동에서 산 생명의 존재적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허은규의 ‘삼거리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이란 작품은 철갑고래와 흰 얼굴들이 등 무늬로 번지는 고향 닮은 바다에 백합조개, 난파선을 들락거리는 해마, 강장동물의 촉수로 그려지는 해협과 청정횟집 감성돔의 푸른 눈을 통해서 저들의 무리와 헤엄치고 싶은 충동을 애증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엿보인다.
  염병기의 ‘정자나무를 품다’란 작품은 고향 길에 지나는 동구 밖의 정자나무는 마음의 고향으로 믿음의 그늘로 그리움의 터전으로 존재한다. 부모와의 삶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곳이란 걸 일깨우고 그 앞에 서면 세파에 견딘 세월의 약으로 한 자락 쓸어 담아 가슴에 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다시일어나 시작할 용기와 힘을 주는 존재로 의미가 강한 사유의 깊이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도구적인 목적시나 관념적인 산문시가 난무하는 세태에 자기숨결의 정체성 찾기의 능력이 돋보인다. 염병기의 ‘정자나무를 품다’를 당선작으로 밀며 사물과 사유를 절제된 시로 갈고 닦는 작업에 힘써 건실한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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