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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경제] [2024] 빗방울이 만드는 동그라미는/이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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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36회 작성일 2024-09-26 21:04: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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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만드는 동그라미는/이호영

  입을 벌리고 아 하는 발음이다
  빗방울은 아 를 무수히 발음해 보지만 소리가 나지 않고
  아 의 생각을 끊어낼 수가 없다

  동그라미들에게서 이야기가 태어난다
  동그라미는 생겼다 없어지며 아 라고 입을 벌렸다가 오므린다

  동그라미에서는 왜 구석기의 거친 돌 냄새가 날까
  동그라미에서 몇 개의 말로 소통하는 구석기 사람들의 혀의 감촉이 건너 온다

  옛사람들은 오랜 궁리 끝에 아 에서 하늘과 하느님과 환함과 새로움을 발견해냈지만*
  지금은 수만 개도 넘는 말에 파묻혀 뿌리조차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
  아 를 발견한 사람들의 후손은 동그라미에서 네모와 세모를 만들고 그 사이에서 무한 번식을 했다
  아 의 뿌리와 줄기를 고민하는 동안은 이미 한참이나 증식해온 넓이

​  잘못된 가계도라고 동그라미를 매도하는 이도 있겠지만 동그라미는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세상의 수많은 언어에 가지를 펼치고 잎이 흔들리는 동그라미

  어떤 이에겐 이미 지워졌거나 어눌해진 아 가 줄줄이 새서 흘러내리고
  어떤 이에겐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빨간 피가 될 수도 있다

  지금도 이것들을 그림이라거나 기호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고
  백성을 지극히 사랑한 어진 대왕이 천재 학자들을 모아 손수 지어 낸 거라고 박박 우길 수도 있지만
  우리의 후대는 조용하거나 억센 아 를 계속 개발하고 있는지 모른다

  빗방울의 차가운 동그라미가 내 머리 속을 계속 탈출하고 있다


 * 구길수 <진본천부경> : 재야국어학자 구길수는 최치원이 지었다는 천부경 81자를 신비주의적 사상으로 해석하지 않고 이두로 해석하여 천부경의 찬가라고 함. 천부인으로 알려진 ○와 □와 △는 우리 글자의 뿌리이며 우리의 말과 글은 동시적으로 생기고 발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2024 글로벌경제신문 시니어 신춘문예 대전 당선작


이호영 시인
1955년 대전 출생, 현재 세종 거주
2017  창조문학 시조시인 등단
한국 문인협회 회원
2024 글로벌 경제 신춘문예 당선

[심사평]

시 부문 응모작들의 주제는 다양했으나, 아무래도 인생의 가을, 겨울에 접어든 이의 마음 풍경이 주류를 이뤘다. 부모, 자식, 손자 등 가족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자연에 대한 애정이 그 풍경의 고갱이였다. 공동체를 함께 이루는 이웃에 대한 다양한 시각도 엿볼 수 있었다.

작품들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만큼 수상작을 뽑는 일은 어려웠다. 상을 주고 싶은 작품이 넘쳤기 때문이었다.

수상하신 분들께 정말 큰 축하를 드린다. 아쉽게 뽑히지 못한 분들도 계속 정진하시길 바란다.

수상작 <빗방울이 만드는 동그라미>는 발상과 구성이 독창적이다. 활달한 상상 덕분에 시적 시공간이 길고 넓다. 자신만만하게 언어를 부리는 것이 돋보인다. 수상자의 또 다른 작품 <세종호수 뒤집기>도 개성이 빼어나다. 시니어 문예상에서 이런 작품을 자주 봤으면 좋겠다.

​- 작가 장재선   

​[당선 소감]
오매불망 당선을 바라던 며칠 전과 달리 당선통보를 받고는 마음이 격해졌다가 오늘은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이게 뭐지 생각해보니 제가 썼던 수많은 시들이 발표될지도 모르는 가능태로 있던 날이 끝났구요 이제 세상에 실제로 실재하는 실체가 될 거라는 생각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예요 이제 제 시는 세상에 나가 스스로 성장하고 존재하다가 사라지게 되겠지요 제가 생명체를 낳아 세상에 내보내게 되는 거잖아요 그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 것이었어요 설레기도 하지만요

​제 시가 생명의 옷을 입게 해주신데 대해 글로벌경제신문과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랜 시간 제게 가르침을 주신 시인님들, 특히 최근에 저를 지도하고 이끌어주신 김분홍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문우님들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늙은 아빠의 당선 기쁨을 아내와 딸 사위 아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제 시 ‘빗방울이 만드는 동그라미는’은 재야국어학자 구길수의 우리의 말과 글은 동시적으로 생기고 발달하였다고 하는 주장을 시로 표현해 본 것인데요 구길수는 최치원이 지었다는 천부경 81자를 신비주의적 사상으로 해석하지 않고 이두로 해석하여 천부경의 찬가라고 설명합니다 천부인으로 알려진 ○와 □와 △는 우리 글자의 뿌리라고 하는데요 우리도 이제 우리말과 글의 뿌리에 대해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서 우리의 정신문화가 올바로 설 수 있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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