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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NGO] [2024] 즐거운 등/강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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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10회 작성일 2024-09-26 21:07:40 댓글 0

본문

즐거운 등/강기영

​  우리 동네 수선집 아저씨는
  늘 등 뒤에다 라디오를 틀어 놓는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 다 등 뒤에다 놓아두고
  눈앞에 놓인 실밥을 뜯는다

​  등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돋보기안경 알에 우묵하게 고이듯 온갖 일들 다 알고 있다

  줄이고 늘리고 뜯고 다시 깁는 일이
  구부린 등의 힘에서 벌어진다
  고도로 집중하는 저 각도는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보이지 않는 등 뒤를 믿는 자세다

  라디오 사연들은 마치 아저씨의 등에 업히듯,
  때로는 업힌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 다독이듯 흘러나온다

  등 뒤로 지나가는 시간은 늘 지금이고
  손때 묻은 재봉틀의 노루발이 느릿느릿 걸어도
  어느 날엔 실밥이 터져 정오가 줄줄이 새는 태양이 찾아오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엔 지루한 장마가 찾아와
  잿빛 구름 수선을 의뢰하기도 한다

  즐거운 등 뒤,
  고개를 들 때,
  오목하게 고였던 초점들이
  근시의 근처까지 흩어진다

​  멀리 시력이 사라진 것처럼 실과 바늘이 추던 춤을 멈추고 누워 있다

  등을 구부리고 고개를 숙이는 행동은 굴종(屈從)과 공경이 번갈아 쓰이지만 나지막이 내려놓은 아저씨 등은 한 집안을 일으키는 일로 쓰였다

​  등을 펴고 등을 끄는 일로
  하루의 무게를 꿰매는 즐거운 등이다

 ​[당선 소감]

​늦은 나이에 문학을 만났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조금 더 빠르게 걷겠습니다.

  시는 멀리 떠 있는 별처럼 아득했지만 만나고 싶었습니다. 만나서 만져도 보고 깨뜨려 보기도 하고 오래 쥐고 싶었습니다. 시와 함께 매일의 삶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가끔 나의 자아에 놀림을 받는 일도 종종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오랫동안 책장 속에 끼워 놓은 '꽃들에게 희망을',책을 펼치자 접힌 날개가 푸드덕 소리를 냅니다. 분명 시 안에는 날개가 있었고 아픈 추억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오래 머금은 말이 가장 멀리 날아간다는 것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날개를 달아 주신 한국NGO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저를 이끌어주신 중앙대 문예창작 전문과 과정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문우로 만나 시의 길을 안내해준 엄세원 시인, 끝까지 관심 갖고 격려해준 이사과 시인 늘 고맙습니다.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 박상원 씨와 언제나 나의 첫 독자인 두 딸 지윤, 지예와 함께 이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강기영 시인
대전 출생
동덕여자대학교 졸업
중앙대 문예창작 전문과 과정 2년 수료


[심사평]

​심사위원 : 구재기 시인 · 강경호 평론가

​"시대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통찰 돋보여"

​  최근 들어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공통점은 시행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래 서정시가 갖고 있는 정제된 언어가 많이 이완되어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번 응모작들 대부분도 이른바 신춘문예 풍의 시행이 길어진 경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당선자인 강기영의 응모작들은 시행이 길어도 압축과 정제된 언어들로 짜임새가 있다. 당선작인 「즐거운 등」은 인체의 한 부분인 ‘등’을 ‘최선을 다하는’ ‘한 집안을 일으키는’ 등 언어의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강기영의 작품들은 우리의 현실이 직면한 질문으로, 울림이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는 강점이 있다. 포스트휴먼의 감각을 드러내는 시가 많아지는 시대에, 강기영의 진중한 정서에 심사위원들의 마음이 더 간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응모작 모두가 편차 없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고 있어 더욱 마음이 기울었음도 밝힌다.

  끝까지 선자(選者)들의 손에 남아 논의의 대상이 된 시인은 이화윤과 최수안이다. 이화윤의 「보믜」는 무연고 노인의 죽음에 대해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하는 금동반가사유상으로 대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노인과 금동반가사유상의 간극을 보믜로 연결하는 것도 적절하다. 최수안의 「종이족」은 말하는 방식의 새로움을 활용하여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응모자 중 가장 출중하였다. 그러나 두 분 모두 함께 응모한 작품들 간에 편차가 있어 안타깝게 밀려났다. 조만간 다른 지면을 통해 만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새로운 시인의 출현을 기뻐하고, 시를 읽는 즐거움을 전해준 응모자들에게는 응원의 마음을 건넨다.

(글 : 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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