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2024] 펜치가 필요한 시점/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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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치가 필요한 시점/김해인
짜장면과 짬봉 앞에서 고민하는
나를 절단해 줘요
불가마에 단련된 최초의 연장이 되느냐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오는 레디메이드 툴이 되느냐
이것도 중요하지만
선택 후의 방향은 어디인지 알 수 없어요
차라리 한 끼 굶을 일을
어느 시궁창에 빠질지 모를 일입니다
오른쪽 손과 왼쪽 손이 친척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를 꾹 눌러서 이쪽저쪽으로 갈라줘요
이쪽으로 가면 강의 상류 끝에 서 있는 물푸레나무를 만나고 싶죠
저쪽으로 가면 바다의 시작,
흰 치마를 펼쳐서라도 항해하는 게 로망인 걸요
밸런스게임은 사양할게요
이쪽으로 가면 파란 대문이 열려 있고
저쪽으로 가면 녹슨 대문이 부서져 있다거나
이쪽으로 가면 왕이 되고
저쪽으로 가면 거지가 된다는 동화 같은 거 믿으라고요?
차라리 사지선다형으로 바꿔주세요
검은 셔츠와 흰 셔츠 중 뭐가 필요하냐고요
지금은 펜치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심사평]
노동하는 육체 가져와 비유 리듬 증폭시켜
삶을 언어로 건축하면서 자기를 실현하려는 노고가 반갑고 고마웠다. 한미정의 ‘거베라에 대한 경배’ 외 2편, 이영숙의 ‘아침이 검고 정오는 무심하고 저녁은’ 외 2편, 이희복의 ‘이소’ 외 4편, 김혜린의 ‘작약’ 외 3편, 김해인의 ‘펜치가 필요한 시점’ 외 2편을 가려내어 거듭 읽었다. 한미정의 시편은 사물에 투사하면서 가족 이야기를 기술하는 솜씨가 좋았고, 이영숙의 시편은 외부를 자기의 사건으로 시화하는 과정이 성실했으며, 이희복의 시편은 몸을 지닌 삶의 고단한 일상을 시적 언어로 잘 육화하였다. 모두 일정한 수준을 갖춘 작품들이다. 남겨진 김혜린의 시편은 진정한 관계를 염원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였고, 김해인의 시편은 노동하는 삶을 통하여 자기를 성찰하는 발화가 진지하였다. 김혜린의 시편과 김해인의 시편을 두고 우리는 망설였다. 마음의 무늬에 상응하는 전자의 생생한 이미지들이 우리를 붙들었고, 경험의 구체성을 담보하는 언어의 명징함을 지닌 후자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둘을 모두 신인으로 내어놓아도 좋을 만큼 시적 성취를 보였기에 우리의 선택은 지체되었다. 마침내 이미지의 미학보다 구체적 삶의 언어로 기울었다. 김해인의 ‘펜치가 필요한 시점’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공구와 더불어 노동하는 육체를 말하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노래하였는데, 처음에서 중간을 지나 끝에 이르기까지 시적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 의미를 증폭하는 비유와 리듬을 잘 형성하였다. 정진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구모룡 평론가, 성선경 시인
[당선 소감]
용접공들과 커피 나누며 시 찾아낼 것
기차가 다리를 접고 커다란 눈을 껌뻑거리는 시간이 있었다. 모던의 그림자들이 허리가 꺾인 채 짙어가는 시절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함께 뜀박질하던 노을이 사라진 날도 많았다. 지금부터는 시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서랍 구석구석을 쫓고 찾아서 거리로 내모는 것이다.
낯선 플랫폼에서 공구로 생계를 이어온 지 33년이란 시간이 갔다.
새벽녘 봉고를 타고 온 용접공들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일과가 시작되었고 휴가란 저 멀리 동떨어져 있는 세계인 줄 알고 살았다. 저마다 자란 키만큼 한 발 짝씩 하늘에 다가서는 나무들처럼 이 공간에서 시가 나오고 삶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요즘 크게 깨닫는다.
큰형님, 동현, 광현, 예쁜 며느리 정남이,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이 고맙고 미안하다는 얘기를 전합니다. 언젠가는 ‘울타리에 대하여’라는 글을 쓰리라 다짐합니다.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어주신 조말선 선생님에게 무한한 존경과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합니다. 늘 창 문학회와의 인연을 만들어 준 장정애 문우님, 임성섭 회장님, 총무님, 함께 공부해 주신 문우님들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저의 졸작을 심사하여 주시고 세상에 내어주신 심사위원님과 부산일보사 관계자님들에게 두 손 모아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해인 시인 (본명 김인래)
1961년 부산 출생
계명대 사학과 졸업, 현대상사 대표, ㈔국제PEN 부산지회 회원
짜장면과 짬봉 앞에서 고민하는
나를 절단해 줘요
불가마에 단련된 최초의 연장이 되느냐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오는 레디메이드 툴이 되느냐
이것도 중요하지만
선택 후의 방향은 어디인지 알 수 없어요
차라리 한 끼 굶을 일을
어느 시궁창에 빠질지 모를 일입니다
오른쪽 손과 왼쪽 손이 친척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를 꾹 눌러서 이쪽저쪽으로 갈라줘요
이쪽으로 가면 강의 상류 끝에 서 있는 물푸레나무를 만나고 싶죠
저쪽으로 가면 바다의 시작,
흰 치마를 펼쳐서라도 항해하는 게 로망인 걸요
밸런스게임은 사양할게요
이쪽으로 가면 파란 대문이 열려 있고
저쪽으로 가면 녹슨 대문이 부서져 있다거나
이쪽으로 가면 왕이 되고
저쪽으로 가면 거지가 된다는 동화 같은 거 믿으라고요?
차라리 사지선다형으로 바꿔주세요
검은 셔츠와 흰 셔츠 중 뭐가 필요하냐고요
지금은 펜치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심사평]
노동하는 육체 가져와 비유 리듬 증폭시켜
삶을 언어로 건축하면서 자기를 실현하려는 노고가 반갑고 고마웠다. 한미정의 ‘거베라에 대한 경배’ 외 2편, 이영숙의 ‘아침이 검고 정오는 무심하고 저녁은’ 외 2편, 이희복의 ‘이소’ 외 4편, 김혜린의 ‘작약’ 외 3편, 김해인의 ‘펜치가 필요한 시점’ 외 2편을 가려내어 거듭 읽었다. 한미정의 시편은 사물에 투사하면서 가족 이야기를 기술하는 솜씨가 좋았고, 이영숙의 시편은 외부를 자기의 사건으로 시화하는 과정이 성실했으며, 이희복의 시편은 몸을 지닌 삶의 고단한 일상을 시적 언어로 잘 육화하였다. 모두 일정한 수준을 갖춘 작품들이다. 남겨진 김혜린의 시편은 진정한 관계를 염원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였고, 김해인의 시편은 노동하는 삶을 통하여 자기를 성찰하는 발화가 진지하였다. 김혜린의 시편과 김해인의 시편을 두고 우리는 망설였다. 마음의 무늬에 상응하는 전자의 생생한 이미지들이 우리를 붙들었고, 경험의 구체성을 담보하는 언어의 명징함을 지닌 후자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둘을 모두 신인으로 내어놓아도 좋을 만큼 시적 성취를 보였기에 우리의 선택은 지체되었다. 마침내 이미지의 미학보다 구체적 삶의 언어로 기울었다. 김해인의 ‘펜치가 필요한 시점’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공구와 더불어 노동하는 육체를 말하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노래하였는데, 처음에서 중간을 지나 끝에 이르기까지 시적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 의미를 증폭하는 비유와 리듬을 잘 형성하였다. 정진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구모룡 평론가, 성선경 시인
[당선 소감]
용접공들과 커피 나누며 시 찾아낼 것
기차가 다리를 접고 커다란 눈을 껌뻑거리는 시간이 있었다. 모던의 그림자들이 허리가 꺾인 채 짙어가는 시절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함께 뜀박질하던 노을이 사라진 날도 많았다. 지금부터는 시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서랍 구석구석을 쫓고 찾아서 거리로 내모는 것이다.
낯선 플랫폼에서 공구로 생계를 이어온 지 33년이란 시간이 갔다.
새벽녘 봉고를 타고 온 용접공들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일과가 시작되었고 휴가란 저 멀리 동떨어져 있는 세계인 줄 알고 살았다. 저마다 자란 키만큼 한 발 짝씩 하늘에 다가서는 나무들처럼 이 공간에서 시가 나오고 삶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요즘 크게 깨닫는다.
큰형님, 동현, 광현, 예쁜 며느리 정남이,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이 고맙고 미안하다는 얘기를 전합니다. 언젠가는 ‘울타리에 대하여’라는 글을 쓰리라 다짐합니다.
새로운 시의 세계를 열어주신 조말선 선생님에게 무한한 존경과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합니다. 늘 창 문학회와의 인연을 만들어 준 장정애 문우님, 임성섭 회장님, 총무님, 함께 공부해 주신 문우님들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저의 졸작을 심사하여 주시고 세상에 내어주신 심사위원님과 부산일보사 관계자님들에게 두 손 모아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해인 시인 (본명 김인래)
1961년 부산 출생
계명대 사학과 졸업, 현대상사 대표, ㈔국제PEN 부산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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