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2024] 젠가/홍다미
페이지 정보
본문
젠가/홍다미
우리는 즐거움을 쌓기 시작했죠
딱딱한 어깨를 내어주며 무너지지 않게 한 계단 한 계단 다짐을 쌓았죠 대나무가 마디를 쌓듯 빌딩이 올라가고 집값이 올라도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를
오지 않는 내일을 오늘처럼 지금처럼
바람 무게를 견디려면 마스크
쓴 계절도 빙하 녹는 북극도 쌓아야 하는데
밤하늘이 별빛을 빼내고 있었죠
쌓기만 하는 뉴스는
싫증나고요
거꾸로 가는 놀이를 해볼까요
쌓아놓은 블록을 하나씩 빼내는 놀이
장난감을 빼버리면 아이는 자라서 부모 눈물을 쏙 빼버리고 최저임금을 빼내면 알바는 끼니를 빼먹고 잠을 빼내면 기사님은 안전이란 블록을 빼내고야 말겠죠
언젠가 도심 백화점도 한강 다리도 이 놀이를 즐기다 쏟아졌고
모닝 키스도 굿나잇 인사도 기념일도 블록으로 빼내면 연애도 와장창 무너지겠죠
한순간 한 방이면 끝나는 게임
손끝의 감각을 믿기로 해요
쌓아 올린 우리가 와르르 무너질까봐
우린 서로의 빈틈을 살짝 비껴가는 중이죠
[심사평]
쓸쓸한 삶의 깊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
새로 시를 시작하는 이들의 시를 읽는 것은 하얀 눈이 쏟아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창밖에 숲으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이 있고 발자국 두 개가 나란히 찍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게 됩니다. 숲 안에 내가 꿈꾸는 신비한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1천79편의 시를 읽어 가는 동안 어지러운 세상살이 속에서도 우리들의 시는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유혜진씨의 '속옷을 사러 갑시다' 따뜻히 읽었습니다. '내일 속옷을 사러 갑시다 / 모레도 살아 있을 우릴 위하여' 라는 진술이 핍진한 우리들의 삶에 희망을 줍니다. 스케치처럼 다가오는 희망의 풍경들이 좀 더 웅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임준표씨의 서정시편들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불면' 속에 스민 눈 속을 울며 찾아오는 이의 이미지는 오늘 우리 시에서 보기 힘든 정서입니다. 이 이미지 속에 보다 맑고 신비한 새로운 시대의 샘물을 빗기 바랍니다. 고등학생인 양유민님, 그림과 함께 쓰여진 시가 따뜻하고 섬세했습니다. 양유민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한국 시단에서 곧 볼 날이 있을 것입니다
제 손에 최종적으로 남은 시 두 편이 있었습니다. 전규씨의 '마카롱'과 홍다미씨의 '젠가'를 읽어가는 내내 가슴의 설레임과 함께 찾아오는 선택의 압박이 있었습니다. 두 시 모두 쉽고, 사랑스럽고, 세계에 대한 자기 선언이 있었습니다. '슬픈 시는 싫어 근데 쓰다보면 슬픈 시가 돼' 로 시작되는 시는 '자금성에는 나무가 없고 일본 마루는 밟을 때마다 새가 울어서 시시해'라고 얘기합니다. 모든 시시한 풍경 속에 세계의 미학을 찾고자 하는 전규씨의 유니크한 시를 곧 볼 날이 올 것입니다. '젠가'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우리 시대가 간직한 쓸쓸한 삶의 깊이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해 놓았다는 점과 함께 새해 아침 신문에 발표된다는 신춘문예의 특성도 고려되었습니다. 홍다미씨의 시 세계가 보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시란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축하합니다.
곽재구 시인
[당선소감]
"시의 몸을 만드는 일은 즐겁고도 고단한 것"
올려다봅니다. 한 번도 건너본 적 없던, 매달리면 흩어지던,
운동장 한쪽에는 구름사다리가 있어요. 건너간 친구들은 모두 귀가했고, 나는 높이를 가늠해봅니다. 봉을 밟고 올라서서 매달려봅니다. 뻗어 있는 곳은 귀가의 방향, 내 두 다리는 바닥을 벗어납니다. 왼팔로 견디며 흔들거리며 오른팔을 뻗는 동안 사다리는 머리 위 구름의 자세로 손을 내밉니다. 잡는 순간 놓아버릴 것만 같은, 미끄럽고 차가운,
모래놀이, 오징어, 시소, 타이어는 바닥에 놓여 있고 나는 공중에 매달려 있어요. 매달린 손바닥이 뜨거워집니다. 저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고, 한 칸씩 나아갈수록 사다리는 길어집니다.
두 팔을 두고 돌아왔어요.
종일 카페에 앉아 동작을 연습해봅니다. 한 팔로 매달려 버둥거리며 왼팔 오른팔을 옮겨가는 연습, 긴팔원숭이가 되어 정글을 날아다니는 연습, 나뭇가지를 타고 둥글게 휘어집니다. 매달리는 동작이 흘러가는 감각으로 변할 때까지, 쓰고 지우고 손을 바꿔가며 고쳐 쓰다가 나는 구름과 사다리를 분리해봅니다.
구름과 사다리는 구름, 사다리, 비, 사다리, 자꾸 나를 건너갑니다. 뻗어야지, 놓아야지, 붙잡아야지, 젖고 미끄러지면서 운동장의 몸이 길어집니다.
시의 몸을 만드는 일은 즐겁고도 고단한 것 같습니다. 최종심에 이름이 오르길 몇 해, "난 할 수 있어"와 "내가 할 수 있을까" 사이에서 기우뚱거리다가 쏟아지고 홀가분해졌을 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는 꿈만 같았습니다. 알고 있어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요.
詩 옷의 첫 단추를 지어주신 마경덕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중앙대 문예 창작 전문가 과정을 통해 많은 깨우침이 있었어요. 김근, 황인찬, 이병일, 임정민, 이지아, 류근 교수님 감사합니다. 예리한 시선으로 서로의 보풀을 떼어내 주고 형태를 고민하면서 주경야독해 온, 각자의 확고한 시 세계를 꿈꾸는 시동인<자몽> 문우들과 오래오래 함께할 겁니다. 빈틈을 메워주고 응원해 준 남편과 딸, 아들 그리고 시어머니 황순예 여사님 고맙습니다. 친정엄마 우옥이 여사님 존경합니다.
무등일보사 관계자님들과 견고한 구름사다리의 손 내밀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홍다미 시인
강원도 삼척 출생
춘천교대 미술교육과, 강원대 교육대학원 심리학 전공
중앙대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2년 수료
우리는 즐거움을 쌓기 시작했죠
딱딱한 어깨를 내어주며 무너지지 않게 한 계단 한 계단 다짐을 쌓았죠 대나무가 마디를 쌓듯 빌딩이 올라가고 집값이 올라도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를
오지 않는 내일을 오늘처럼 지금처럼
바람 무게를 견디려면 마스크
쓴 계절도 빙하 녹는 북극도 쌓아야 하는데
밤하늘이 별빛을 빼내고 있었죠
쌓기만 하는 뉴스는
싫증나고요
거꾸로 가는 놀이를 해볼까요
쌓아놓은 블록을 하나씩 빼내는 놀이
장난감을 빼버리면 아이는 자라서 부모 눈물을 쏙 빼버리고 최저임금을 빼내면 알바는 끼니를 빼먹고 잠을 빼내면 기사님은 안전이란 블록을 빼내고야 말겠죠
언젠가 도심 백화점도 한강 다리도 이 놀이를 즐기다 쏟아졌고
모닝 키스도 굿나잇 인사도 기념일도 블록으로 빼내면 연애도 와장창 무너지겠죠
한순간 한 방이면 끝나는 게임
손끝의 감각을 믿기로 해요
쌓아 올린 우리가 와르르 무너질까봐
우린 서로의 빈틈을 살짝 비껴가는 중이죠
[심사평]
쓸쓸한 삶의 깊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
새로 시를 시작하는 이들의 시를 읽는 것은 하얀 눈이 쏟아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창밖에 숲으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이 있고 발자국 두 개가 나란히 찍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게 됩니다. 숲 안에 내가 꿈꾸는 신비한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1천79편의 시를 읽어 가는 동안 어지러운 세상살이 속에서도 우리들의 시는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유혜진씨의 '속옷을 사러 갑시다' 따뜻히 읽었습니다. '내일 속옷을 사러 갑시다 / 모레도 살아 있을 우릴 위하여' 라는 진술이 핍진한 우리들의 삶에 희망을 줍니다. 스케치처럼 다가오는 희망의 풍경들이 좀 더 웅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임준표씨의 서정시편들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불면' 속에 스민 눈 속을 울며 찾아오는 이의 이미지는 오늘 우리 시에서 보기 힘든 정서입니다. 이 이미지 속에 보다 맑고 신비한 새로운 시대의 샘물을 빗기 바랍니다. 고등학생인 양유민님, 그림과 함께 쓰여진 시가 따뜻하고 섬세했습니다. 양유민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한국 시단에서 곧 볼 날이 있을 것입니다
제 손에 최종적으로 남은 시 두 편이 있었습니다. 전규씨의 '마카롱'과 홍다미씨의 '젠가'를 읽어가는 내내 가슴의 설레임과 함께 찾아오는 선택의 압박이 있었습니다. 두 시 모두 쉽고, 사랑스럽고, 세계에 대한 자기 선언이 있었습니다. '슬픈 시는 싫어 근데 쓰다보면 슬픈 시가 돼' 로 시작되는 시는 '자금성에는 나무가 없고 일본 마루는 밟을 때마다 새가 울어서 시시해'라고 얘기합니다. 모든 시시한 풍경 속에 세계의 미학을 찾고자 하는 전규씨의 유니크한 시를 곧 볼 날이 올 것입니다. '젠가'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우리 시대가 간직한 쓸쓸한 삶의 깊이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해 놓았다는 점과 함께 새해 아침 신문에 발표된다는 신춘문예의 특성도 고려되었습니다. 홍다미씨의 시 세계가 보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시란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축하합니다.
곽재구 시인
[당선소감]
"시의 몸을 만드는 일은 즐겁고도 고단한 것"
올려다봅니다. 한 번도 건너본 적 없던, 매달리면 흩어지던,
운동장 한쪽에는 구름사다리가 있어요. 건너간 친구들은 모두 귀가했고, 나는 높이를 가늠해봅니다. 봉을 밟고 올라서서 매달려봅니다. 뻗어 있는 곳은 귀가의 방향, 내 두 다리는 바닥을 벗어납니다. 왼팔로 견디며 흔들거리며 오른팔을 뻗는 동안 사다리는 머리 위 구름의 자세로 손을 내밉니다. 잡는 순간 놓아버릴 것만 같은, 미끄럽고 차가운,
모래놀이, 오징어, 시소, 타이어는 바닥에 놓여 있고 나는 공중에 매달려 있어요. 매달린 손바닥이 뜨거워집니다. 저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고, 한 칸씩 나아갈수록 사다리는 길어집니다.
두 팔을 두고 돌아왔어요.
종일 카페에 앉아 동작을 연습해봅니다. 한 팔로 매달려 버둥거리며 왼팔 오른팔을 옮겨가는 연습, 긴팔원숭이가 되어 정글을 날아다니는 연습, 나뭇가지를 타고 둥글게 휘어집니다. 매달리는 동작이 흘러가는 감각으로 변할 때까지, 쓰고 지우고 손을 바꿔가며 고쳐 쓰다가 나는 구름과 사다리를 분리해봅니다.
구름과 사다리는 구름, 사다리, 비, 사다리, 자꾸 나를 건너갑니다. 뻗어야지, 놓아야지, 붙잡아야지, 젖고 미끄러지면서 운동장의 몸이 길어집니다.
시의 몸을 만드는 일은 즐겁고도 고단한 것 같습니다. 최종심에 이름이 오르길 몇 해, "난 할 수 있어"와 "내가 할 수 있을까" 사이에서 기우뚱거리다가 쏟아지고 홀가분해졌을 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는 꿈만 같았습니다. 알고 있어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요.
詩 옷의 첫 단추를 지어주신 마경덕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중앙대 문예 창작 전문가 과정을 통해 많은 깨우침이 있었어요. 김근, 황인찬, 이병일, 임정민, 이지아, 류근 교수님 감사합니다. 예리한 시선으로 서로의 보풀을 떼어내 주고 형태를 고민하면서 주경야독해 온, 각자의 확고한 시 세계를 꿈꾸는 시동인<자몽> 문우들과 오래오래 함께할 겁니다. 빈틈을 메워주고 응원해 준 남편과 딸, 아들 그리고 시어머니 황순예 여사님 고맙습니다. 친정엄마 우옥이 여사님 존경합니다.
무등일보사 관계자님들과 견고한 구름사다리의 손 내밀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홍다미 시인
강원도 삼척 출생
춘천교대 미술교육과, 강원대 교육대학원 심리학 전공
중앙대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2년 수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