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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 [2024] 화살표의 속도는/황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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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90회 작성일 2024-09-26 21:56: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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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의 속도는/황주현

 걷고 달리고 날아가는 속도다 화살표는 정지해 있으면서도 계속 이동 중이지만 뒷걸음질 치는 기능이 없다

 화살표에서는 왜 짐승의 울음소리가 날까

​ 궤적에서 공격성이 자란다 사활을 건 뾰족한 모양이 머리인지 입인지 코인지 궁금해 한 적 없지만 그것이 가끔 말을 하거나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도 한다

 화살표는 계속 어디론가로 날아가고 도망가고 사라지려 한다 몇몇 동물들은 그런 화살표와 비슷한 외모를 노력 끝에 얻었지만 지금은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화살표를 발명한 사람들
 혹은 진자운동처럼 0과 0 사이에서 태어나고
 그 사이를 무한 반복한다

 꼬리에 두느냐 머리에 두느냐를 고민하는 동안은 이미 한참이나 날아 온 거리다 어떤 사람에게선 이미 녹이 슬거나 그 끝이 뭉툭해진 화살표가 무더기로 발견되고 또 어떤 사람에겐 마치 새싹처럼 이제 막 돋는 일도 있다

 빗나가는 과녁을 가진 것들도 많겠지만
 명중이라는 끝을 두고 있다
 공중에 초록을 박아 넣고 이리저리 여진을 앓고 있는

 저것들, 혹은 그것들

 지금도 화살표를 가로 막거나 되돌려 놓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단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화살표를 조종하는 또 다른 화살표를 개발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여전히 화살처럼 관통하는 날이다

■ 심사평
일상적 언어로 깊은 울림의 사유 이끌어내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가운데 예심을 통과해서 올라온 작품은 일정한 수준에 이른 작품이 많았다. 신춘문예 작품의 성향과 경향을 대변했던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보다는 독자와의 소통도 염두에 둔 작품이 많았다.

전체 응모자 263명이 보내온 작품 1338편 중 1차 예심과 2차 예심을 거쳐서 올라온 작품은 모두 26편이었는데 최종 후보작은 세 편이었다. 황주현의 ‘화살표의 속도’, 강00의 ‘밑줄의 강도’, 금00의 ‘국수광합성’이다.

강00의 ‘밑줄의 강도’에서는, 강조하기 위해 그어놓은 밑줄이 가지는 힘을 얘기하고자 했다. 유의미한 밑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이거나 함정일 수도 있다. 그것을 피하려다가 낭패하거나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가 강제하는 규범이나 프로파간다가 그 밑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밑줄의 순작용과 함께 그 모순과 부작용을 그려내려고 한 작품이다. 자유연상에 기초하여 이질적인 소재와 관념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언어사용이 돋보인다. 구어체의 자연스러운 사용도 화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시적 진술들이 하나의 유의미한 질문으로 완성되거나 어떤 유기적 의미망으로 입체화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직소퍼즐 ‘윌리를 찾아라’에서 너무 많은 윌리가 아닌 것을 소거해야만 윌리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시의 중심에 닿기 전에 너무 많은 허들을 지나야 한다. 개인적 언어사용이 독자와의 소통에 장애가 되지 않는 지점을 잘 찾아내면 충분한 성장의 가능성이 보인다.

금00의 ‘국수광합성’도 심사위원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광합성은 식물이 그 생명을 에너지를 얻기 위해 햇빛을 매개로 한 화학반응이다. 마찬가지로 화자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얻는데 여기서는 국수가 그 매개로 등장한다. 분열된 자아를 하나로 화해시키는 작용을 한다. 국수는 일종의 치유를 위한 레시피이다.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흐름을 유지하면서 화해라는 메시지가 성공적으로 드러나지만, 한편 그 점이 이 작품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격식체인 ‘해요체’ 종결어미라든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순조롭게 화해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함께 제출한 ‘무지개 고래’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시가 품고 있는 따뜻함이나 안온한 정서가 매우 잘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적이지 않다는 점은 신인에겐 흠결일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황주현의 ‘화살표의 속도’에 심사위원들의 집중적인 관심이 모였다. 도로 위나 공사장 벽 지하철 계단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화살표에서 간단하지 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힘이 만만치 않다. 화살표 그 자체는 움직이지 않지만 움직이게 한다. 걷거나 뛰거나 날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문명을 가리킬 때는 공격성을 가진 짐승이 된다. 그 속성으로 보아 욕망이라 이름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문명, 혹은 욕망의 기표라 해도 무방하다. 계속 움직여야 하는 생래적 운명 때문에 사라지거나 멸종하기도 한다. 그러나 없음0과 없음0 사이에서 무한 재생산된다. 뒷걸음질 치는 기능이 애초부터 제거되어 있는 이 화살표로부터 반성 없는 문명의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화살처럼 관통하는 날이다. 정작 아픔에 대해서 말한 바 없지만 치명적인 관통상으로 우리는 앓고 있다.

작위적 언어 조합으로 생경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대신 관절이 유연한 일상적 언어로 깊은 울림의 사유를 이끌어낸다. 한 줄기로 꿰어지는 서사가 없어도 느낌과 의미의 입체적 재구성에 문제가 없다. 통찰의 힘이 느껴지는 시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도 고른 질을 유지하고 있다. ‘우산이라는 계절’은, 가령 우산이라는 발명된 문명의 도구가 거꾸로 본래 있었던 계절을 환기하고 인간의 의식과 언어를 규정하기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본말이 전도된 모순적인 현상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황주현의 작품은 실험적인 시들이 가지고 있는 소통을 소홀히 여기지 않으면서 깊은 의미의 울림을 가진 시를 쓸 역량으로 평가된다. 이에 심사위원 전원은 ‘화살표의 속도’를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하였다.

-심사위원장 강희근 시인
-심사위원 복효근(심사평), 박우담, 김성진, 채수옥 시인

■ 당선소감

“당선입니다”라는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그다음 말을 놓쳤다. 그 짧은 찰나는 시의 연과 연 사이만큼 가늠하기 어려운 여백이었고 행간에 던져진 쉼표의 행렬 같은,

살면서 이렇게 준비 안 되는 일도 생기다니. 살면서 또 이렇게 기습적으로 벅찰 수도 있다니. 끈질기게 시(詩)를 놓지 않은 시간에 대한 시(詩)의 의리 있는 화끈한 화답이었다. 신춘이 지구의 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인가. 뜨겁다 못해 얼어붙은 몇 날 며칠 내 몸에 더운 꽃들이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다. 봄의 화살이 너무 일찍 당도했다.

화살표는 지나온 시의 계절 쪽으로 좌회전, 우회전, 돌아가시오로 끊임없이 방향을 틀고 있었다. 나의 심상은 오래도록 한곳에 정차하지 못했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나를 끌고 다니고 가끔은 몰아붙이고 또 가끔은 던져두고 사라지곤 했다. 행방이 묘연한 시의 궁핍이 어딜 가서 진득하게 노숙할 수 있었겠나. 치열하게 먹고 사는 일로 나의 화살표는 시의 마을엔 자주 연착이었지만 어김없이 안개 걷힌 맑은 새벽에 당도하여서는 또 환한 출발이 되곤 하였다.

‘신춘문예’라는 네 글자는 고유명사도 아니고 형용사도 아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떨려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싱싱한 동사다. 포장 안 된 자갈밭과 함부로 꽃 피지 않는 모래밭을 맨발로 뛰어가고 있다. 어느 시인의 말씀처럼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쓰면’ 아직은 쓸만한 무소의 심장이다, 그 심장을 심심치 않게 놀릴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

신춘을 활짝 열어 주신 경남도민신문과 ‘화살표의 속도’에 따뜻한 손을 잡아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삼시세끼 꼬박 밥을 갖다 바치는 ‘내 안의 해’인 순흥 안씨 미경!, 최고로 미안하고 고맙다. 윤서, 정후는 나의 예측의 별이다. 꽉 찬 배추 속구배이 같은 시퍼런 지원군인 나의 칠 남매 형과 누나들, 이 모든 나의 가족이 진정 내겐 영원한 ‘신춘’임을 자랑하고 싶다.
황주현 시인

경기도 수원시 거주·화성문인협회, (덤)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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