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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2024] 해변에서/박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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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09회 작성일 2024-09-26 22:32:26 댓글 0

본문

해변에서/박유빈

 눈이 간지러워서
 해변으로 갔다
 화창한 날씨
 눈부신 바다
 환한
 사람들
 수평선만큼 기복 없는 해변의 감정
 너무 밝다

 해변을 산책하던 나는
 반짝이는 모래알 사이에서 보았다
 그것은 눈알
 실금 없이 깨끗한 눈알
 바다에서 떠밀려온 유리병도 아니었고
 피서객이 흘리고 간 유리구슬도 아니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움찔거리는 그것은
 오점 없이 깨끗한 눈알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햇살에 인상을 찌푸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제 화창하지 않다
 내가 만든 그늘서 눈알은
 부릅뜨기 좋은 상태
 그러나 내 뒤로 사람들이 지나갈 때
 눈알은 움찔거렸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해초처럼 누워서 왔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유언일지도 모르고

 그때 배운 것 같다
 사랑하지 않고도 빠져 죽는 마음
 떠오른다
 어떤 이의 어리숙한 얼굴
 꼭 죽을 것만 같았던 사람

 아니 그것은 죽은 것
 혹은 벗어놓은 것
 떠밀려온 것
 유유자적
 흘러온 것
 눈알은 하나뿐이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걱정될 뿐이다
 메마를 것 같다
 언젠가
 미끈한 눈웃음 짓던
 사람을 사랑한 고래가 그랬듯이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다 보면
 무언가 밟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세상에 막 내던져진
 작은 눈빛
 오늘은
 어느 때보다 화창한 날
 어디에도 흐린 곳 하나 없다

 너무 밝다

 최선을 다해
 기지개 켜는
 눈알의 의지

심사평

이번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응모작들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이는 심사위원 세 명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런 이유로 본심에서 논의될만한 작품들을 고르는 과정도 치밀한 독서가 필요했다. 시간도 오래 걸렸다.

공들인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기쁨 속에서 ‘변기는 가능합니다’ 외 2편, ‘통증’ 외 2편, ‘홀리데이 페퍼민트 캔디’ 외 2편, ‘해변에서’ 외 2편, ‘수저통’ 외 2편을 골랐다. 열띤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해변에서’ 외 2편과 ‘수저통’ 외 2편이었다.

먼저 ‘수저통’ 외 2편은 시를 풀어나가는 안정된 솜씨가 인상적이었다. 대상의 슬픔을 환유적 비유로 풀어내는 능력도 좋았고 이를 감상적으로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공감도 높은 이미지와 생활 감각 속에서 충분히 설득될 수 있을 정도로 그려냈다. 또한 대상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따뜻한 시선이 아름답고도 능숙하게 다가왔다.
박유빈의 ‘해변에서’ 외 2편은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었다. 특히 당선작 ‘해변에서’는 더욱 그렇다. 바닷가에 떠밀려온 ‘눈알’이라니! 비유나 상징이 아니다. 정말 ‘눈알’이다. 이 낯선 설정을 끝까지 기이하면서도 설득력있게 풀어나가는, 차라리 힘을 뺀 화자의 태도가 더 신뢰감을 주었다. 거기에 상처와 고독, 사랑의 슬픔이 자연스럽게 겹치도록 풀어내는 과정은 읽으면 읽을수록 흡입력이 있었다.

최종 결론은 빨리 낼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낯선 상상력에 점수를 주기로 흔쾌히 합의했다. 마음을 담아 축하를 보낸다. 이 응모자가 펼쳐나갈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기대된다.

심사위원=김언 박상수 최정란 시인

당선소감

비몽사몽 상태에서 당선 전화를 받았다. 나는 덤덤했다. 당선은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았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해 왔을 뿐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당선이라는 기차역을 지나왔을 뿐이다. 그냥 그런 거다.

산책이 좋은 이유는 무겁지 않아서다. 가끔 나는 시가 산책 같다고 느끼는데, 무겁지 않은 느낌이 시와 산책의 공통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를 쓸 때는 조금 가벼워지려고 노력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힘이 많이 들어갔네, 어쩌네, 그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 시란… 나다울 수 있는 가벼운 산책이어야 했다. 시는 ‘언젠가는 제대로 해낼 산책’ 같다. 정말로, 반드시, 언젠가는 시간을 내서 끝내주는 산책을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나는 그게 시였으면 좋겠다. 돌아갈 집이 없어도 괜찮다. 이건 그냥 산책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종국엔 시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이상한 자신감이 있다. 멀고도 가벼운 나의 산책, 시와 ‘아는 사이’가 되어 매 순간 나를 스치는 느낌을 반기면서.

함께 문학을 공부한 친구들과 동창들에게 먼저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순간들을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너희와 했던 모든 산책 덕분에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문학을 택했을 때 무턱대고 나를 지지해 준 우리 가족에게도 고맙다. 산책하는 마음은 우리 가족으로부터 만들어졌으니까.

심사를 봐주신 김언, 박상수 그리고 최정란 시인께도 감사하다. 시를 알려주신 이승하, 이수명 그리고 김근 교수님께도 감사하다. 정말로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시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송승언 선생님께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시로 인해 행복해진다면 선생님 덕분이겠다고, 좋은 시가 아닌 ‘산책하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되겠다고. 공부하는 동안 기뻤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박유빈 시인

2000년 양산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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