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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2024] 운주사 천불천탑/김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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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98회 작성일 2024-09-26 23:10: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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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천불천탑/김준경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그 누구도 떠밀지 않았다
저마다 한손에 정을, 다른 손에 망치를 들고 찾아왔다
운주계곡 조용한 골짜기를 따라 돌을 쪼는 소리가 이어진다

하나의 고통을 담아 한번의 망치질, 하나의 괴로움을 담아 쌓은 한층
사바세계로부터 깎여나간 마음 부여잡고 눈앞의 돌을 깎아 나간다

참아낼 수 없는 아픔을 돌위에 올려 깎아서 내버리면 눈이 나오고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돌위에 올려 깎아서 내버리면 귀가 나오고
벗어날 수 없는 원망을 돌위에 올려 깎아서 내버리면 입이 나온다

고해의 파도 속에서 멈추지 않고 들리는 돌 쪼는 소리

고통이 모여 돌을 가루로 만들고 괴로움이 쌓여 탑을 이룰 무렵,
돌속에서 웅크려 있던 부처님이 들꽃같이 환하게 피어난다
풀내음을 품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 앞의 민초를 맞이한다
투박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가까운 그 모습
그 거친 어깨 끌어안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울고 싶다
고해의 파도에 깎여나간 마음 쥐어짜내 입술 깨물고 울고 싶다

마음의 부스러기가 섞여 나온 눈물을 부처님께서 가사자락으로 닦아주면
지나간 괴로움을 땅에 내려놓고 다가올 염원을 부처님께 올린다
염원이 모여 천개의 석탑이 되었고, 천분의 석불이 되었다
천가지 괴로움과 천가지 염원으로 세워진 민초들의 작은 불국토
같은 모양없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저마다의 위치에 서서 정토세계를 꿈꾼다

[심사평]

당선작은 작품의 완성도 높아
​올 불교신문 신춘문예의 시‧시조 부문 응모작은 1500여 편에 이른다 한다. 이 엄청난 양의 응모작 가운데 예심을 거쳐 선자에게 넘어온 작품은 106편이었다. 10대1이 넘는 경쟁을 거친 셈이다. 선자는 한 편 한 편 꼼꼼하게 읽어 10편을 가려냈다. 역시 10대1이 넘는 경쟁을 거쳐 선정된 작품은 ‘빈자일등’, ‘돌확 발우’, ‘갠지스를 배회하는 불빛’, ‘구석골 동석이’, ‘소금 꽃’, ‘저녁 강’, ‘술래잡기’, ‘나를 만나러 가는 길’ 등이었다. 이 작품들을 다시 읽어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은 시조 ‘석등’과 시 ‘운주사 천불천탑’이었다.

시조 ‘석등’은 정형을 잘 지키고 있고, 오랜 습작의 공력이 느껴졌다. 그런데 ‘탯줄의 행렬’, ‘고샅길 펼쳐들고’ 같은 표현이 작품의 신선미를 떨어뜨리는 아쉬움이 있었다. 현대시조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정형율을 지키다 자칫하면 표현이 진부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절가조라는 시조 본래의 명칭처럼 현대시조는 현대인의 정서를 담아야 한다.

시 ‘운주사 천불천탑’은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아픔’과 ‘분노’, ‘원망’을 ‘깎아서 내버리면 눈’과 ‘귀’ ‘입이 나온다’는 표현, ‘고통이 모여 돌을 가루로 만들고 괴로움이 쌓여 탑을 이룰 무렵,/돌속에서 웅크려 있던 부처님이 들꽃같이 환하게 피어난다’는 표현은 크게 새롭지는 않아도 적확하다. ‘운주사 천불천탑’을 ‘천가지 괴로움과 천가지 염원으로 세워진 민초들의 작은 불국토’라고 본 끝부분의 표현은 이 작품의 완결성을 높여주었다.

두 작품을 들고 오래 고심하다가 당선작은 한 편이라는 주최 측의 방침에 따라 ‘운주사 천불천탑’을 당선작으로 하였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고 마지막 관문에서 아쉽게 탈락한 분들은 더 좋은 작품을 쓰는 계기로 삼아주시길 당부드린다.

유자효 시인· (사)한국시인협회장


[당선소감]

다른 사람들에게도 쉼표로 다가오는 시 쓰겠다

사실 당선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습니다. 시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일천한 제가 당선이 될 수 있을까 집필하는 동안에도, 제출하러 가는 길에서도 스스로에게 되물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했기 때문에 제출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성취감과 함께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출한 이후로는 잊고 다음 작품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당선 소식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상을 넘어선 결과, 불확신을 깨고 날아든 쾌보(快報)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동안 눈앞이 탁한 불확실의 세계 속에 있으면서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떻게 써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을 손끝으로 더듬어가면서 나아가던 제게 당선 소식은 앞길에 피어난 은은한 등불로 다가왔습니다. 문인의 등용문 신춘문예에서 안겨주신 이 기회를 이전보다 더 열심히 시를 갈고 닦으라는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다가올 신년, 보다 더 정진하는 자세로 집필에 전념하겠습니다.
아직 시에 대해 더많은 배움이 필요한 저에게 과분한 영광을 안겨주신 심사위원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부족함이 많은 아들을 항상 응원하고 지지를 아끼지 않는 본가에 계신 부모님,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은근한 사랑을 주시는 할머니, 소질이 있다면서 시를 계속 써보라고 격려를 보내주신 이승하 교수님까지 감사를 드릴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에게도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다는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시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숨을 돌릴 수 있는 숨구멍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의 철학에서 시적인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영감을 영감으로만 남기지 않고, 정교하게 새겨진 만다라처럼 한 단어, 한 문장 한땀 한땀 전심을 다해 활자로 옮겨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쉼표로 다가오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먼 타향에 홀로 나가 사는 변변찮은 아들을 항상 걱정하시는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도 나름대로 구르는 재주가 있습니다라고 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김준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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