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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 [2023]시/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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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80회 작성일 2024-11-14 13:54:0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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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김현주

​올라가는 것을 동경한 적이 있나요
덜컥 파랗던 하늘이 정지 영상으로 멈추기 직전까지
가장 먼 곳을 밟기 바로 전

힘차게 발을 뻗는 것과
마음을 멀리 두는 건 또 다른 일이라
어디를 향해 올라가는지 물어본 적이 없어요

롤러코스터와 대관람차를 탈 때
목적지를 묻지 않는 것처럼
오래전 죽은 나무로 만든
시소 위에 앉아서 말이에요

놀이터는 높이에 묶인 유배지
멀리 떠나지 못한 놀이들이 박혀 있어요
아이들은 숲보다 낮은 그네를 타고
얕은 철봉을 돌아 둥글게 떨어져 내리죠

눈이 없는 기린과 입 벌린 녹색의 악어 사이
차가운 높낮이로 기울어지는 그림자 속에서도
물이 흐르고 빛은 형체를 그려요
어둡게 올라가는 나는 짧은 시간의 끝에서
당신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가끔,
내려가 보는 거예요
동그랗게 짓이겨진 이끼의 위치 아래
녹슨 용수철과 나비의 날개
매몰된 습지가 자유롭게 부유하며 떠오르도록
발 디딤이 없는 한 칸마다
당신을 향한 깊이가 높이로 기화하고
비명처럼 자라는 어린 잎들이
밤새 날고 있다는 착각으로 웅성거리도록

당신이 내리면 허공,
나는 어느새 제한된 공중으로 떠오릅니다


당선소감 | 김현주

"지치지 않고 온몸으로 쓰는 사람 될것"

쓰는 것이 모든 것의 끝이라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을 떠올리며 걸어왔습니다. 어둡고 희미한 그 길에서, 시는 폐허가 된 나를 낯선 세상으로 거리낌 없이 데려가 주고 때론 밑바닥의 경계까지 몰아붙이며 강렬한 어퍼컷를 날리곤 했습니다. 달콤쌉사름하고 중독적인 그 녹다운의 순간 뒤로, 숨겨진 심연 너머의 진짜 세상이 아른거립니다. 수없이 넘어지더라도 지치지 않고 일어나 걷겠습니다. 모든 순간의 시작과 끝을 똑바로 마주하며 온몸으로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경상일보와 심사위원님, 처음 시의 문을 열어주신 최금진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함께 걷는 시와몽상 문우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차가운 세파 속에서 늘 돌아가 머무를 곳이 되어주는 중재씨와 우리 고양이들, 가슴 깊이 사랑합니다.


심사평 | 유성호 문학평론가


"시소의 물리적 속성, 삶의 기율로 은유한 명편"

2023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많은 응모작이 투고됐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15명이 투고한 15편이었다. 이들 시편은 저마다 개성적인 경험과 언어를 특권으로 삼고 있음을 실감 있게 느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구체적 경험과 고도로 조직된 언어에 정성을 쏟은 시편들이 호의적으로 찾아왔고, 결국 시상의 참신함과 작품의 완결성, 앞으로 시인으로서의 삶을 이끌어갈 지속 가능성 등을 두루 참작해 김현주씨의 ‘시소’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시소’는 시소가 가지는 물리적 속성인 ‘올라감’과 ‘내려옴’이라는 순환성을 삶의 기율로 은유한 명편이다. 멀리 떠나지 못하고 높은 데를 향하는 시간과 낮고 얕은 곳으로 떨어지는 시간이 그 안에 함께 흐르고 있다. 그러다가 깊이가 높이로 전화되는 순간에 ‘당신’을 발견해가는 사랑의 서사가 아름답게 전해져온다. 시소를 둘러싼 역동적 이미지들을 파생시키면서 자신을 규율해온 시간과 불화하고 화해하는 교차점을 그려냈다고 판단된다. 우리에게 친숙한 시소를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남겼을 잔상을 상상하면서, 그것을 비교적 긴 호흡 속에 구성하는 만만찮은 비유적 능력을 보여준 사례일 것이다. 앞으로 훨씬 더 좋은 작품을 써갈 것이라고 예감해본다.

이 밖에도 구체성 있는 시상과 언어를 통해 자신만의 사유와 감각을 구축한 시편들이 많았음을 부기하고자 한다. 당선작은 언어 구사의 참신함과 완성도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다음에 더 빛나는 결과를 얻기를 기대해본다. 당선자에게 크나큰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응모자 여러분께는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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