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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2023]볼트/임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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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86회 작성일 2024-11-14 14:44:0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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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임후성


코끼리를 보라

코끼리끼리는 볼 수 없는 코끼리를 보라

꼬리를 위해 서 있는 네 번째와 세 번째 다리를 보라

걸음을 뗄 때 발을 남기고 벗겨질 것만 같은 발의 접힌 거죽을 보라

달라붙어 있지 않고

그것은 끌려다닌다

우리의 난제였던 바깥이다

실체는 헐렁헐렁하다

그 안에서 기관을 해체하는 망치질 같은 코끼리의 걸음을 보라

눈앞에 직접 정의된 코끼리를 보라

걸을 때마다 부서지고 있지 않은가

간신히 어금니로 연결되어 있지만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코끼리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안과 바깥은 서로에게 통증이 그지없다



뒤쪽 숲을 보라

나뭇잎들이 가지에 붙어 벌여졌다 오므라들었다 한다

나무 주위를 맴돌며 탈출이 어려운

바람의 원숭이들을 보라

가장 가까운 붉은색을 볼 수 없는 원숭이의 눈을 보라

저 영특한 종족은 의혹의 못에 박힌 매혹이다

이때 고개를 돌려 완전한 불의 형태로 시간을 태우는 대관람차를 보라

오전의 하품 같은 간격을 보라

회전의 무의미 아래 네게 권해지는 네 머릿속을 보라



주차장에서 마주친 사 년 전 그 사람을 보라

하천이 흐르는 대로변에서

다리 아래로 유혹해

교량의 접합부마다 극렬하게 박힌 볼트를 해가 질 때까지 함께 보았던 그 사람을 보라

볼트 하나를 빼 보고 싶었던 그 사람을 보라

그가 너를 찾아 나섰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볼트 하나를 갖고 있다

그와 상관없이 혼자서 한 번 더 다리를 건너라

다리는 흔들거린다

그 아래를 보라

조그만 구멍을 남기고 녹슨 생략이 있다








당선소감 | 임후성



"고향을 떠난 모든 ‘미사일’에게 읽어주고 싶은 시"



이 기쁨에 아득함이 있다. “‘볼트’는 어떻게 그곳까지 갈 수 있었을까.”



당선 소식 후 잠시 자리를 피해 줬던 일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날짜를 확인한다. 겨울이 느리게 가는구나. 일상은 왠지 사소한 일에도 조금 더 책임을 요구하는 것 같다. 무반주 첼로를 들으니 코끝에 저수지가 생기는 기분이다. 세계 안에서 파편인 나는 이제 새롭게 비행해야 한다. 상승과 하강의 난류(亂流)를 지나며 나는 시의 이름으로 호명될 것이다. 착빙하는 동체에 닿는 빛의 차가움은 문학의 신경인가. 고향을 떠난 모든 미사일에게 시를 읽어 주고 싶다.



누구의 것인지 알지 못하는 편지 한 통이 와 있다. 읽어 보고 싶은데 그 전에 내게 자꾸 다른 일이 생긴다. 그럴 줄 알았어. 편지는 또 다른 이에게 가 버릴 거야. 그러면 나는 읽지 못한 편지의 말을 대신 써 나가도 좋겠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 그립습니다. 존경하는 극작가이신 아내 김성민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늘 저를 보호하고 삶과 문학을 위한 수공업적 자세를 길러 주셨습니다. 저는 문학과 예술의 동료로서 당신에게 속합니다. 외롭고 높게 인문 연극하는 극단 피오르에 감사드립니다. 서현과 진서에게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나의 변증법입니다. 예선을 거쳐 최종심까지 질식의 시간을 견뎌 준 ‘볼트’에게 감사합니다. 당선의 영광을 주신 서울신문에 감사드립니다. 아름답고 절실하고 성스러운 모국어에 감사합니다. 어쩌면 영원히,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는 오늘의 관습 앞에서 순결한 존재의 먼 얼굴을 회상한다.








심사평 | 신해욱 오은 정끝별 시인



"코끼리와 사회의 연결, 그 상상력과 호흡에 감탄"



“한 명.” 신춘문예는 한 명을 찾는 일이다. 인파 속에서 그 사람을 찾아야 한다. 예년보다 응모작이 많은 데다가 수준 또한 높아서 심사장은 후끈후끈했다. 한 명이 될 수 있는 이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793명이 응모한 3001편의 시들을 집중하며 읽었다. 팬데믹의 여파가 경기 침체, 청년 실업 등의 양상으로 응모작에 나타났다. 삶의 피로와 미래에 대한 비관이 진득하게 느껴졌다.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고 기후 위기를 염려하는 시도 눈에 띄었다.



본심에 올라온 세 명의 응모자는 개성으로 빛났다. 개와 오리와 코끼리 등 동물이 시를 이끄는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공통점이었다. ‘여름의 잠’(외 2편)을 보낸 응모자는 정적인 장면을 상상으로 부풀리는 데 거침없었다. 상상이 끝나고 질문이 바닥나도 여운은 오랫동안 현장에 머무를 수 있음을 담담하게 보여 주었다. ‘문에 기대지 마시오’(외 2편)를 쓴 응모자는 예사로운 풍경에서 움직임을 그려 내는 데 능했다. 골목길과 지하철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아름다운 날들”을 복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가만히 설득해 냈다.



토론 끝에 ‘볼트’ 외 2편을 응모한 임후성을 그 ‘한 명’으로 결정했다. ‘볼트’는 코끼리 다리에서 볼트를 연상하고 코끼리 몸집과 사회 구조를 빗대어 전개하는 시다. 코끼리를 알기 위해서는 코만 만져 봐서는 안 된다. 펄럭이는 귀, 네 개의 튼튼한 다리, 길쭉한 코, 단단한 상아까지 만져 봐야 한다. 그의 시 쓰기가 톺아보기를 지향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막힘없는 상상과 내달리듯 호흡하는 문장은 읽는 맛도 더해 주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코끼리처럼 성큼성큼 나아가되 주변의 작은 존재들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응모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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