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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2023]파도는 7번 국도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최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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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82회 작성일 2024-11-14 14:45:3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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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7번 국도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최주식





부산데파트 앞 버스정류소는 7번 국도의 시작 또는 종점



우리집은 종점이었어 산7번지 처음 보는 마이크로버스가



똑같이 생긴 집에서 똑같이 생긴 아이들을 실어 날랐어



똑같은 책가방을 메고 똑같은 학교에서 똑같이 생기지 않은



한 여자아이를 좋아하던 어느 날 내가 전학 온 것처럼



그 아이도 전학을 가버리고 나는 인생이 무언가 오면



가는 것이라고 비정한 것이라고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하루는 종점에서 시작되었어



아침이면 늘 신발이 젖었어 밤새 파도가 다녀간 거야



파도는 7번 국도를 타고 온다고 그래서 종점에서 내려



처음에 이상했던 일이 계속 일어나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아



아무도 도망치지 못한 하루가 말라비틀어진 화분 사이로 걸어가면



아저씨 제발 화분에 물 좀 주세요 글쎄 파도가 화분만 적시지 않는구나 공허한 대답처럼 버스가 다시 오면 젖었다 마른 행주처럼



종점에서 시작되는 아침 젖은 신발을 신고 다니면 세상이 질척거려



자꾸 달아나고만 싶어 7번 국도를 달리면 바다를 볼 수 있을 거야



파도를 만나면 내 젖은 신발을 두고 올거야 다시는



젖은 신발을 신지 않을 것이라고 똑같이 생기지 않은



여자아이를 닮은 다 큰 여자가 국수를 마는 집을 나선 날



종점에 버스는 한 대도 없었어








당선소감 | 최주식



"나이 들며 무너진 마음, 그걸 잡아준게 詩"



눈이 오네. 창밖을 물끄러미 보다가, 잠깐 나갔다 올까 속엣말을 하며 문을 여는데 그새 희미해진 눈발이 비 되어 내린다. 그래도 나선 길, 다시 우산을 챙겨 들고 동네 주변을 좀 걸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우산 위에 송골송골 맺힌 쓸쓸한 기분을 툭툭 털어내고 의자에 앉으니 전화벨이 울린다.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소식이다. 거짓말 같다는 말, 정말이다.



서면 영광도서에 서 있던 이십 대 초반 무렵의 내가 보였다. 서점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시집들의 무게에 눌려 아, 저기 내 자리는 없겠구나 돌아서던 뒷모습. 그리고 시를 쓰지 못했다. 삼십여 년의 세월이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나이 드는 게 편해’라는 위약을 매일 유산균처럼 먹었다. 날들과 계절이 오고 갔다. 마음이 견디기 힘들 때 시를 읽으니 조금 나아졌다. 나도 모르게 무너지는 마음일 때 그것을 잡아주고 버티게 해주는 힘. 다시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똬리를 틀었다.



우연히 눈에 띈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 공고.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아내는 왜? 라고 묻지 않았다. 그래, 하고 싶었던 거 해. 눈물이 살짝 기쁜 마음은 잠시, 두려움이 피어오른다. 내가 시에서 얻은 위로만큼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시를 쓸 수 있을까. 이 상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주는 것이리라.



김이듬 손택수 김참 심사위원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시를 써야 한다는 것. 꼭 갚아야 할 부채로 알겠다. 시에 대한 안목과 자세에 대해 가르침 주신 정홍수 류근 황인찬 이지아 선생님께 감사 인사 올린다. 아내 재인, 우리 아이들 성렬, 민서 고맙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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