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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2023]박스에 든 사람/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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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92회 작성일 2024-11-14 14:50:5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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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에 든 사람/박장​

손을 잡아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방지턱을 넘는 버스. 내 키를 덮는 그림자. 엄마는 보이지 않고 내 손엔 엄마의 검지만 쥐어져 있었다.

눈 뜨면 구석일 때가 많았다.

나는 주문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의 면도기와 골프공, 설렁탕을 담는다. 여섯 살 때 내가 잃어버린 휴게소를 클릭한다. 얼굴의 푸른색은 휴대폰에 옮겨둔다.

산소에 간다. 캔커피와 꽃을 산다. 살수록 비굴해진다. 더 비굴해지기로 한다. 그렇게 주문을 건다. 주문은 많은 걸 해결해 준다.

써보지 않은 양식의 글을 쓴다. 흰 봉투에 넣어 책상에 올려둔다. 이력서는 모두 폐기한다.

택배는 내가 받고 내역서는 그가 받는다. 방금 도착한 복숭아가 물러 있다. 상처가 잘 보이도록 사진을 찍는다. 스티로폼 박스에 반품이라 쓴다. 뽁뽁이로 싸맨다. 구겨, 몸을 넣는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아이스팩을 끼운다. 뚜껑을 닫는다.

칼로 뜯지 마세요. 던지지 마세요.

아무도 열어주지 않아 나는 나를 열고 나온다. 뜯긴 머리카락을 털어낸다. 팔과 다리의 얼룩을 눌러본다. 운송장 번호가 없다. 받는 사람이 지워졌다. 상자를 열고 다시 몸을 넣다가,

그를 주문한다.


당선소감 | 박장

"나를 등질 수밖에 없던 때…시를 통해 숨 쉴 수 있었다"

아이를 낳지 못해 쫓겨났다. 아버지는 엄마를 버리는 대신 육지를 등졌다. 제주로 향하는 밤. 엄마는 처음 프러포즈를 받았다. 정 살 길이 없으면 돌아오는 배에서 뛰어내리자고. 아무도 모를 거라고. 그렇게 손가락을 걸었다. 섬 사람들은 간첩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곳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라 하고 감자를 고구마라 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안태를 바다에 던졌다고 한다.

나를 등질 수밖에 없던 때가 있었다. 이내 시가 보였다. 시를 읽으면 숨이 잘 쉬어졌다. 시만 읽었다. 쓰고 싶은 마음은 자동문처럼 열렸다.

이 마음을 잘 받아주신 김기연 선생님. 방향을 잡아 주신 이영주 선생님. 따뜻하고 단단하게 매어주신 하재연 선생님. 텐션을 올려 주신 손미 선생님. 선생님들 덕분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함께 시를 공부했던 모든 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작당」 「작정」 「무작정」 「작약동맹」 「닥치는대로」 여러분의 도움이 컸습니다. 희영, 연정, 오래 곁에 있어줘서 고맙고. 그리운 갑수 씨, 춘자 여사, 병해, 병욱 사랑합니다. 나의 산타! 준! 윤! 당신들은 나의 전부입니다.

고 서정호 님께 늦은 소식 전합니다. 포기하지 말란 말씀 꼭 쥐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신 세 분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심사평 | 신철규 손진은 문태준 시인


"시적 상황을 다층적 구성…우리 삶의 어두운 구석 포착"

​심사는 예심과 본심을 통합해 진행되었고, 논의를 거쳐 10여 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평이한 감각에 머물거나 시적 긴장을 견인하는 힘이 부족한 작품들이 일차적으로 걸러졌다. 현실의 문제를 예리하게 파고들면서 내면의 감정을 응축한 절제의 미학과 시어의 갱신을 이루어낸 작품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재독과 윤독을 거쳐 5편으로 압축한 뒤 다시 3분의 작품을 두고 최종적으로 깊은 논의를 거쳤다.

​박이음의 시는 세련된 형식과 새로운 화법으로 눈길을 끌었다. 관계의 어려움과 현실의 불안을 포착하는 감각이 돋보였다. 툭툭 끊기는 질문과 대화들 속에는 대상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결단이 담겨 있었다. 내밀한 고백과 연계된 낯선 이미지가 감정의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시적 대상의 관계와 상황의 맥락이 잘 잡혀 있지 않아 시적 주체의 사유와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감각적인 언어 구사와 주제에 따라 목소리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능력도 좋고, 시의 도입부를 도발적인 진술이나 감각적인 묘사로 제시하여 흡인력 또한 있었으나, 환상적인 상황 설정이 혼돈스러운 시적 전개와 맞물려 의미를 잡기 어려웠고 흐릿한 환상으로 처리된 종결부에서 오히려 시적 긴장이 떨어지는 면이 아쉬웠다. 투고한 다른 시편들의 질적 편차가 있다는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박선민의 시는 새로운 발견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중심에서 이탈되거나 인식의 '외곽'에 머물러 있는 것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 낯선 사유를 끌고 가는 힘이 있었다. 또한 정해진 중심과 질서가 포섭하지 않는/ 못하는 주변의 것들, 중간과 평균으로 재단된 것들 너머를 지향하는 이미지들이 교직되면서 주제로 응집되어 시적 완결성을 갖추고 있었다. 허나 상상력의 폭이 예상된 범위 안에 머물러 있고, 관념적인 진술이 사유의 깊이를 동반하지 못하거나 체험의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동어반복에 그치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투고된 작품들이 엇비슷한 시적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목소리도 일정해 단조로운 인상을 받았다. 시적 대상과 현실의 고통이 맞닿는 자리를 섬세하게 잇대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박장(본명 박미영)의 시는 언어의 내포와 외연의 긴장을 최대한 끌어올려 역전된 현실에 대한 감각으로 밀고 가는 힘이 있었다. 시적 상황을 다층적으로 구성하는 형식적 실험과 세계 내의 상징적 폭력에 따른 고통이 핍진하게 담겨 있었다. 일상적 상황과 사건을 시적 소재로 삼으면서 시적 상상이 현실과 떨어지지 않는 접착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불행한 현실을 아이러니하게 형상화해내는 것도 장점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박스에 든 사람'은 자본주의의 상품 체계에 종속된 삶, 비굴하게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존재가 지워지는 현실이 아버지를 홀로 부양해야 하는 삶의 힘겨움과 겹쳐 비극성이 극대화된다. 간명한 상황 전개가 주는 시적 긴장, 안과 밖을 역전시키는 상상력, 언어의 굴곡과 뒤틀림을 통해 찢어지고 뜯어지고 구겨진 삶의 맨살이 드러난다. 주문을 걸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예리한 파악,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지워진 삶에 대한 냉철한 인식으로 우리 삶의 어두운 '구석'을 정확하게 포착해낸 이 신인의 단단한 내공이 앞날의 시작(詩作)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큰 기대를 가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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