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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2022]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박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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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96회 작성일 2024-11-14 14:52: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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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박재숙

​침대에게 몸을 주는 건, 그에게서 달콤한 봄 냄새가 나기 때문이지 내 주변엔 봄이 너무 많아 침대도 나에겐 봄이야, 그건 아마도 침대를 향한 나의 일방적인 편애일지도 모르겠어

침대는 해마다 겨울이 알려주는 장례관습 따위엔 관심 없어 꿈과 현실 사이에서 철없이 스프링을 쿨렁거려도 푸른 봄은 여전히 아지랑이처럼 오고 있을 테니까

침대 위에서 휴대폰 속 이미지나 사건들을 클릭하고 닫는 동작은 무의미해 그때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내일이 침대 커버처럼 단순해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침대의 생각은 참으로 명료해 홀쭉하게 들어간 배를 쓰다듬으며, 지난밤 겹의 무게 뒤에 펼쳐진 피로를 걷어내고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날 힘을 얻지, 그건 내일이 던져줄 공복을 향한 강한 의지인 거야

공복은 채움의 예비의식이기도 해 그러므로 내 침대는 늘 비어서 오늘 아침이 봄, 때때로 난 널 사랑해 내 생각대로 꽃피게 하고 싶어 레시피는 간단해 갖가지 감정의 재료들을 봄흙으로 만든 황토침대에 쏟아부으면 끝, 그럼 우린 하루 한 끼 제대로 된 꽃밭의 식사를 할 수 있어

사계절은 한결같아 언제나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 불쑥 깨진 거울을 들이미는 봄의 손을 보고 있으면 거울 속의 내가 보여 나인 듯 내가 아닌 듯, 너무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거울의 트릭이 보여

그래도 방언 같은 아지랑이의 말을 기억하는 내 침대는 여전히 오늘 아침이 봄

당선소감 | 박재숙

"혹독한 겨울 흔들어 봄을 일깨워준 시"

나의 오늘은 어제와 닮아있다. 그날이 그날인 것 같은 오후, 나는 핸들을 잡고 서울 외곽순환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와이퍼를 작동시켜도 앞이 흐려 답답하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휴대폰 벨이 울렸다. 국제신문 최승희 기자라고 했다. 갑작스런 당선 소식에 잠시 귀를 의심했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왈칵 눈물이 흘렀다. 자동차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갓길에 잠시 나를 정차시키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가만히 있는 나를 자동차가 어디론가 끌고 가는 것처럼 그 순간 나는 자동차 대신 구름 모양의 시를 타고 있었다. 그동안 오래 문학과 시에 목이 말라 있었다. 그래서 늦게 시작한 공부였고, 2021년 8월에 ‘허수경 논문’이 통과되면서 중앙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늦은 공부에도 응원해주고 끝까지 등을 밀어준 가족에게 감사한다.

시의 압축미를 강조하셨던 이승하 지도교수님과 시가 잘 안 풀릴 때는 미술관을 가라고 말씀하셨던 이수명 교수님, 대학원 분과 수업시간에 ‘시를 쓴다는 행위는 하나의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다’고 묘사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던 조동범 선생님, 좌절을 느끼며 시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계속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셨던 박남희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시를 쓰면서 나만의 독창성으로 남이 할 수 없는 걸 내가 할 수 있다는 기쁨이 생겼다. 이제야 시의 끝자락에 빗방울 같은 나를 들여놓는다. 앞으로 보다 깊이 있는 시 세계를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인이 되겠다.

끝으로 혹독한 겨울을 통과하고 있던 제 시를 신춘의 봄 뜨락으로 성큼 불러내주신 강은교 권정일 문태준, 세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 문태준 강은교 권정일 시인

"유쾌한 상상으로 생명의 의지 캐낸 수작"

국제신문 신춘문예 공모에 보내온 작품들을 읽었다. 어느 해보다 전반적으로 서정적 색채가 두드러져보였으며, ‘어머니’의 존재를 포함한 가족의 이야기를 노래한 작품들이 많아 눈에 띄었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가족이라는 두터운 관계와 그 관계에서 오가는 정감에 시심(詩心)이 쏠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이 토론을 이어간 작품들은 ‘서부도서관 열람실에서의 중얼거림’ 외 4편, ‘흔들렸다’ 외 2편,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 외 2편이었다.

시 ‘서부도서관 열람실에서의 중얼거림’은 너무나 질서 있게 꽂힌 도서관 서고와 검색대가 있는 열람실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그 공간에서의 작은 균열과 소란과 술렁거림과 이탈 욕망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시상 자체가 빛처럼 번득였으나 시어들의 선택과 활용이 다소 평이해 아쉬웠다.

시 ‘흔들렸다’는 하나의 존재에 투영되어 있는 다른 존재, 즉 존재들 사이의 유기적 연결에 주목한 작품이었다.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돌연한 충격을 주어 신선했지만, 함께 보내온 작품들이 이 작품과는 편차가 있어 당선작으로 내는 데에 주저하게 했다.

심사위원들은 시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에 모두 동의했다. 이 시는 회복되는 어떤 생명력의 강인한 힘을 사물인 침대에서 발견해내는 수작(秀作)이었다. 봄의 절기가 갖고 있는 환함과 꽃핌과 탄력을 침대의 공간과 끊어지지 않게 미묘하게 연결시키는 솜씨가 돋보였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에서도 개성적인 신예의 출현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게 했다. 시단에서 특별한 시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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