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2016] 두더지 반지하 신혼방/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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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반지하 신혼방/ 김상현
가을 산길 위에서 느닷없이 냄새가 혀를 밀어 넣었다
하얀 앞발톱의, 엎어져 있는 두더지 주검
두더지는 반지하 방이 되고 있었다
잘 닦은 화이바 같은, 검은 갑옷의 벌레가
시체에 세 들어 늦깎이 신혼방을 만들고 있었다
주검이 있을 때, 짝을 맺는다는 송장벌레
저 더듬이 끝이 뭉툭한 것은
그 교감도 한때는 부딪혀 옹이 박힌 것
구린 터 속에서도 더듬거리며 전등을 갈겠지
저 등판의 빛은 그들 눈에 모닥불이 타오르는 증거다
자글자글 끓는 된장찌개 투가리, 그런 뜨거움 올린
양은밥상을 들고 거뜬히 문지방 넘는 삶
둘은 두더지를 땅에 묻을 때까지
쉬지 않고 흙을 파내려갈 테지
흙으로, 나무뿌리를 갉았을 몸을 닫고 쓰러진 밑바닥 위에
꽃 장판을 깐 다음
반지하가 지하가 된 방 안에서 서로를 쓰다듬겠지
때로는 이웃 풍뎅이 애벌레와 다툴 일도 있겠지만
샛별 같은 알을 낳고 그 아이들은
가까스로 냄새를 막은 몸의, 한 터럭까지 다 뜯어먹고서야
벽 틈새에 손톱 밀어넣는 것이 햇살이었음을 알겠지
목숨이 윤이 나는 저 까만 옷의 청소부 부부
오늘 같은 초야(初夜)면,
숲 속은 달이 익어 참 부끄럽겠다
심사평
삶에서 희망 발견하는 시각 뛰어나
신춘문예라는 제도는 한 편의 작품을 뽑는 일이지만 한 사람의 시인을 문단으로 불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한 작품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응모자가 습작에 쏟아 부은 훈련의 흔적까지 읽으려고 한다. 시와 그 시를 쓴 사람을 같이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기준으로 작품을 판별할 때, 구태의연한 서정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시를 꿈꾸고 있는지, 시에 끌어들인 특수한 성격의 언어들이 이 세계의 보편적이고 균형적인 감각을 확보하고 있는지, 그리고 발설하고 싶은 개인의 일과 발언해야 하는 집단의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을 거쳤는지 등을 살펴보게 된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것은 모두 9명의 작품이다. 말을 다루는 솜씨들이 뛰어나 다들 오랜 습작을 거쳤으리라 짐작되는 작품들이었다. 그렇지만 내면의 울림이 느껴지는 중량감은 대체로 부족해 보였다.
우리는 그 중 5명의 작품에 주목하였다. 정재돈의 <산낙지>, 이시윤의 <4분의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는 낯선 이미지를 충돌시켜 새로움을 구하고자 하는 작품들이지만 아직은 덜 익어 어색한 느낌이 강했다. 서귀옥의 <망중한>은 안정된 호흡으로 주제를 의도대로 차분하게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찌’ ‘생의 잔해들’과 같은 낡은 표현을 하루바삐 걷어낼 줄 알아야 새로운 시의 나라에 당도하리라 생각한다.
이동한의 <사과>는 깜찍하고 활달한 상상력, 군더더기 없는 언어 운용 기법이 매혹적이어서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어깨를 겨루었다. 그런데 시의 뒷부분이 공허한 말장난으로 마무리되는 점이 결정적인 흠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당선작은 김상현의 <두더지 반지하 신혼방>으로 결정되었다. 죽은 두더지의 몸에 깃들어 사는 벌레를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의 따뜻함을 길어 올리는 시인의 시각은 예사롭지 않다. 오밀조밀한 감각의 배치도 뛰어났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우리는 만만찮은 필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죽음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당선작의 온기가 이 냉랭하고 삭막한 세계의 불꽃이 되기를 빈다.
문효치시인 안도현시인
가을 산길 위에서 느닷없이 냄새가 혀를 밀어 넣었다
하얀 앞발톱의, 엎어져 있는 두더지 주검
두더지는 반지하 방이 되고 있었다
잘 닦은 화이바 같은, 검은 갑옷의 벌레가
시체에 세 들어 늦깎이 신혼방을 만들고 있었다
주검이 있을 때, 짝을 맺는다는 송장벌레
저 더듬이 끝이 뭉툭한 것은
그 교감도 한때는 부딪혀 옹이 박힌 것
구린 터 속에서도 더듬거리며 전등을 갈겠지
저 등판의 빛은 그들 눈에 모닥불이 타오르는 증거다
자글자글 끓는 된장찌개 투가리, 그런 뜨거움 올린
양은밥상을 들고 거뜬히 문지방 넘는 삶
둘은 두더지를 땅에 묻을 때까지
쉬지 않고 흙을 파내려갈 테지
흙으로, 나무뿌리를 갉았을 몸을 닫고 쓰러진 밑바닥 위에
꽃 장판을 깐 다음
반지하가 지하가 된 방 안에서 서로를 쓰다듬겠지
때로는 이웃 풍뎅이 애벌레와 다툴 일도 있겠지만
샛별 같은 알을 낳고 그 아이들은
가까스로 냄새를 막은 몸의, 한 터럭까지 다 뜯어먹고서야
벽 틈새에 손톱 밀어넣는 것이 햇살이었음을 알겠지
목숨이 윤이 나는 저 까만 옷의 청소부 부부
오늘 같은 초야(初夜)면,
숲 속은 달이 익어 참 부끄럽겠다
심사평
삶에서 희망 발견하는 시각 뛰어나
신춘문예라는 제도는 한 편의 작품을 뽑는 일이지만 한 사람의 시인을 문단으로 불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한 작품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응모자가 습작에 쏟아 부은 훈련의 흔적까지 읽으려고 한다. 시와 그 시를 쓴 사람을 같이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기준으로 작품을 판별할 때, 구태의연한 서정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시를 꿈꾸고 있는지, 시에 끌어들인 특수한 성격의 언어들이 이 세계의 보편적이고 균형적인 감각을 확보하고 있는지, 그리고 발설하고 싶은 개인의 일과 발언해야 하는 집단의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을 거쳤는지 등을 살펴보게 된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것은 모두 9명의 작품이다. 말을 다루는 솜씨들이 뛰어나 다들 오랜 습작을 거쳤으리라 짐작되는 작품들이었다. 그렇지만 내면의 울림이 느껴지는 중량감은 대체로 부족해 보였다.
우리는 그 중 5명의 작품에 주목하였다. 정재돈의 <산낙지>, 이시윤의 <4분의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는 낯선 이미지를 충돌시켜 새로움을 구하고자 하는 작품들이지만 아직은 덜 익어 어색한 느낌이 강했다. 서귀옥의 <망중한>은 안정된 호흡으로 주제를 의도대로 차분하게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찌’ ‘생의 잔해들’과 같은 낡은 표현을 하루바삐 걷어낼 줄 알아야 새로운 시의 나라에 당도하리라 생각한다.
이동한의 <사과>는 깜찍하고 활달한 상상력, 군더더기 없는 언어 운용 기법이 매혹적이어서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어깨를 겨루었다. 그런데 시의 뒷부분이 공허한 말장난으로 마무리되는 점이 결정적인 흠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당선작은 김상현의 <두더지 반지하 신혼방>으로 결정되었다. 죽은 두더지의 몸에 깃들어 사는 벌레를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의 따뜻함을 길어 올리는 시인의 시각은 예사롭지 않다. 오밀조밀한 감각의 배치도 뛰어났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우리는 만만찮은 필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죽음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당선작의 온기가 이 냉랭하고 삭막한 세계의 불꽃이 되기를 빈다.
문효치시인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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