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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철] 모과처럼/이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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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9회 작성일 2025-04-09 19:53: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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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처럼/이범철

모과의 한 구석이 검게 타 있다
오래된 햇빛이 스스로를 태워 눌어붙은 것처럼
둥글고 딱딱한 햇살의 껍질

나무에 매달려 비바람 칠 때마다 흔들리면서도 자존을 잃지 않았다

자수성가한 고아처럼 단단해지는 것을 늦추지 않았다

햇살이 잎사귀 젖히고 따라오면 떨림을 멈추고 있는 힘 다해
햇살을 빨던 꼭지의 입술, 오늘은 꽉 다문 채 입에 문 햇살 놓지 않는다

목욕을 마치고 수건을 감았던 살결처럼
깊디깊은 향이 돋아나고 있다

분명 여름날 소나기가 잎사귀 뒤로 들어올 때 깊은숨 들이쉬며
심호흡의 저녁을 맞던 모과

모과를 보면 어린 시절 한 움큼의 햇빛과 한 자락의 바람과 한 숟가락의 밥
고드름을 꺽어 먹듯, 놓치지 않았다

나의 웅크린 등 같은 검은 빛이 자라고 있다
코를 모과의 귀에 대고 지나온 길을 듣고 있다

누군가의 모과는 아니고 내가
나의 모과가 되어 이 겨울 향기가 되어
한 사흘 저렇게 앉아 꿈꿀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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