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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의 시

 

경첩의 날들-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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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26회 작성일 2021-11-19 11:25:3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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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첩의 날들
  정미경

여러 날 빈집은 골똘했다
균열이 진행된 문과 문틀의 소문은
예민한 풋잠을 잔다
경첩에서 가끔 끊어질 듯 들리는 울음소리
습기 있는 날은 유난히 들떠
삐걱거리는 소리가 잦았다
아픔이란 대부분 문안의 일이어서
닫힐 때보다 열릴 때 더 선명해진다
어떤 날은 근처 동물원울 탈출한 곰과
사슴이 숨어들기도 했다
열지도 그렇다고 닫지도 못하는 난감한 문
오갈 곳 없이 질주하던 소리들이
문틈에 끼어 어슬렁거렸다
턱까지 차오르던 숨결은
턱 앞에서 꿈결처럼 흘렀다
곰은 가을을 지나 겨울잠을 꼬박 눈뜨고
이듬해 봄까지 서성였다
문은, 어느 쪽에서든 불안의 영역이다
그늘을 압축한 기둥들은 감정이 풍부했다
장마철엔 집이 퉁퉁 붓기도 해
햇살을 찾아 출혈과 지혈이 옮겨 다녔다
쥐죽은 듯 고요한 집
오직 경첩에만 득실거리는 소리들
이 생에선 극구, 여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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