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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조경님/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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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4회 작성일 2025-04-12 10:41:0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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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님/곽재구

늦은 밤 남면 가는
시외버스 차창에서
고단한 네 하현의 눈썹을 보았구나
봉숭아 물든 손톱 너머로
고향집 마당 가득 푸른 하늘은 펼쳐 있고
가을걷이 끝난 들판 억새밭 위로
희게 웃는 식구들의 얼굴도 보이겠지
감잣대를 엮어 말리는 엄마 곁에서
동생들은 또 지난 여름 산사태를 생각할까
흙더미에 묻힌 아버지와 막내
자갈길에 버스는 자꾸 퉁겨오르고
그때마다 깜박 깨어나는 네 졸음 속으로
덧없는 한 시대의 어둠과 슬픔은 밀려가고
차창 밖 어둠 속에 꽃을 던지는
마을의 도라지꽃 불빛이 스스럽다
여느 밤 충장로 거리에 나서면
가시내들은 엉덩이를 부풀린
목 짧은 바지에 퍼머넌트 히히덕거리고
무슨 잭슨 플록이다 카라얀이다 요란하지만
경님아 그것들이 지닌 영혼은
밤 버스에 깜박깜박 조는
고단한 네 일상의 눈썹보다 아름답지 못하다
그것들이 떠들어 대는 피아노 협주곡은
오라잇 하는 네 발차소리보다 정직하지 못하고
그것들이 떠드는 무슨 비구상파 그림들은
네 손톱 끝 연연한 고향 하늘
봉숭아 빛 꿈보다 깨끗하지 못하다
늦은 밤 버스는 논길인 듯 고향 꿈길인 듯
졸며 흔들흔들 떠나고
네 졸음 틈틈이
땀 절은 동전 몇 개를 건네주고 내려서는
저 힘없는 사람들의 뒷등이 따스하다.

-  ​『沙評驛에서』(창작과비평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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