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항아리 1 / 홍윤숙 > 하

빈 항아리 1 / 홍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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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있는 항아리를 보면
  무엇이든 그 속에 담아 두고 싶어진다
  꽃이 아니라도 두루마리 종이든 막대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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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항아리는 긴 모습의
  둥근 항아리는 둥근 모습의
  모 없이 부드럽고 향기로운
  생각 하나씩을 담아 두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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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불고 가랑잎 지는 가을이 오니
  빈 항아리는 비어 있는 속이 더욱 출렁거려
  담아 둘 꽃 한 송이 그리다가
  스스로 한 묶음의 꽃이 된다

  누군가 저처럼 비어서 출렁거리는
  이 세상 어둡고 깊은 가슴을 찾아
  그 가슴의 심장이 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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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항아리는 비어서 충만한
  샘이 된다
  - 홍윤숙,『쓸쓸함을 위하여』(문학동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