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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 난초도둑/문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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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2회 작성일 2025-04-14 15:38: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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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도둑/문성해

도둑이 되려면 난초도둑쯤은 돼야지
돈다발과 패물을 자루 속에 쓸어 담기보단
하나에 몇 억 한다는 난초 분 하나는
업고 나와야 일등 도둑이지

천하의 도둑은 장물의 맘을 살펴야 하는 법
그 가는 옆구리들의 떨림에 집중해야 난초도둑이지
암, 뒤꿈치를 들고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난초들처럼
나도 세상에 나서 큰 도둑이나 한번 돼 보아야지

밖에서 트럭은 부릉부릉 빨리 서두르라지만
나는 개의치 않을 거야
귀를 찢는 보안벨이 울려도
천천히 걸어 나올 거야

나 같은 것 백 명은 팔아도 못 살 그것을
내 천한 심장 가까이 기대인 채로

난 민들레 씨앗 내려앉는 언덕에다 그것을 심어 줄 테야
더덕더덕 억센 뿌리를 내리게 둘 거야
몇 억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할 거야

왕후의 자리에서 여염의 촌부로 만들어 줄 거야
다시는 뽑아 가지 못하게 하늘을 끌어당겨 가려 줄 테야

-  『내가 모르는 한 사람』(문학수첩,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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